9회: 계획과 즉흥 사이에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친구는 말한다. "그냥 가서 느낌대로 돌아다니자. 계획 없이 가는 게 진짜 여행이야."
나는 노트북을 펼친다. "일단 맛집 리스트 좀 만들어놓고 가자. 가서 헤매면 시간 낭비야."
계획파와 즉흥파. 여행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순간에서 우리는 이 둘 사이를 오간다.
계획이 주는 안정감은 강력하다.
무엇을 할지 알고, 어디로 갈지 알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다. 불확실성이 줄어들고, 실패할 확률도 낮아진다. 미리 예약하고, 리스트를 만들고, 동선을 짜놓으면 마음이 편하다.
즉흥이 주는 자유로움도 매력적이다. 그 순간의 기분대로, 우연히 발견한 골목길로, 계획에 없던 카페로. 예상하지 못한 순간들이 때로는 가장 특별한 기억이 된다. 계획에 얽매이지 않으니 부담도 없다.
문제는 극단으로 치우칠 때다.
과도한 계획은 경직된다. 30분 단위로 짜놓은 일정, 리스트를 체크하느라 정작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 계획대로 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예상 밖의 상황을 즐기지 못한다. 여행이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다.
과도한 즉흥은 방황한다. 어디 갈지 몰라 시간을 낭비하고, 가고 싶었던 곳은 휴무일이고, 배는 고픈데 식당을 찾지 못한다. 자유로움이 혼란으로 변한다. 결국 "그래도 좀 알아보고 올 걸" 하고 후회한다.
그렇다면 답은 뭘까.
답은 '느슨한 계획'이다. 큰 틀은 정하되, 디테일은 유연하게. 꼭 가고 싶은 곳 2-3개는 정하되, 동선은 그때그때 정하기. 예약이 필요한 건 미리 하되, 나머지는 즉흥에 맡기기.
소설가 존 레넌은 노래했다. "인생은 네가 다른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다. - Beautiful Boy (Darling Boy)” (1980)" 계획만 세 우다가 정작 인생을 놓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계획 없이 사는 것도 답은 아니다. 방향 없이 표류하다 보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시간만 흘러간다.
여행 가이드북을 덮는다.
"이렇게 하자. 첫날은 계획대로 가고, 둘째 날은 느낌대로 가는 거야."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그것도 계획이잖아."
맞다. 즉흥조차 계획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선택권을 갖는 것. 통제할 것과 내려놓을 것을 선택하는 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