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날에 묻은 향기

향나무는 자신을 찍은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준다

by 수담

"향나무는 자신을 찍은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준다"


이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가슴을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첫 반응은 솔직히 "말이 안 되는데?"였습니다. 누군가 나를 해치면 당연히 화가 나고, 속상하고, 때로는 복수하고 싶기까지 한 게 우리들 아닌가요? 그런데 향기를 묻혀준다고?


하지만 그 문장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마치 작은 씨앗이 마음 한구석에 심어진 것처럼.


얼마 전 주말 오후 지하철에서의 일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제 발을 세게 밟고 지나가셨어요.

사과 한마디 없이. 순간 짜증이 확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그 아주머니가 휘청거리는 것을 봤어요. 다리가 불편하신 것 같았거든요. 아, 일부러 밟은 게 아니었구나 싶었습니다.


그 순간 문득 향나무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나는 지금 향나무가 될 수 있을까? 결국 다음 역에서 그 아주머니가 내릴 때 살짝 자리를 비켜드렸습니다. 큰 일은 아니었지만, 그 순간 마음이 참 평온해졌습니다. 화를 내는 것보다 훨씬 기분이 좋았어요.


향나무는 왜 향기를 내뿜을까요? 누군가를 감동시키려고? 칭찬받으려고? 아니에요. 그냥 그게 향나무의 본성이니까. 도끼가 찍든 안 찍든,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향나무는 그냥 향기를 내뿜어요.


이걸 깨달았을 때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나는 늘 조건부였거든요. 상대가 먼저 잘해주면 나도 잘해주고, 상대가 나쁘게 하면 나도 똑같이 되갚아주고. 하지만 향나무를 보니 다른 방법도 있더라고요. 상대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내가 그냥 좋은 사람이 되는 것.


직장에서도 가끔 '도끼날' 같은 일들이 있어요. 누군가 제 아이디어를 가져가거나, 공을 가로채갈 때. 예전 같으면 바로 따져 물었을 텐데, 요즘은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정말 가끔씩은 향나무처럼 할 수 있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럴 때의 기분이란... 정말 자유롭고 가볍습니다.


가끔 뒤돌아보면 제가 누군가에게는 도끼였을 때가 있었을 것 같아요.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혹시 그때, 그 사람들이 저에게 향기를 묻혀준 건 아닐까 싶어요. 제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말이에요.


향나무가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저는 작은 것부터 연습해보고 있습니다. 누군가 제 앞으로 끼어들어도 화내지 않기, 엘리베이터에서 층수 버튼을 안 눌러주는 사람에게도 웃어주기. 사실 이런 것들도 쉽지 않아요. 그래도 향나무 이야기를 생각하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요. 향나무가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는 것은, 사실 도끼를 위한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게 아닐까 하고요. 미움으로 가득 찬 마음보다는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 더 평화로우니까. 그래서 향나무는 손해 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자유와 평안을 얻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말이죠.


완벽한 향나무가 되기는 아직 멀었지만, 그래도 노력해보려고 해요. 언젠가는 저도 누군가의 도끼날에 자연스럽게 향기를 묻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오늘도 세상 어딘가에서는 누군가가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고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 향기에 작은 몫을 보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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