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선 둘이의 만남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by 수담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 서정윤, 「홀로서기」


서정윤 시인의 이 한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했습니다. 단순해 보이는 문장 속에 사랑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었거든요. 그리고 이 시구를 만나기 전에 읽었던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 겹쳐지면서, 현대인이 놓치고 있는 사랑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프롬은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빠지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했습니다. 마치 깊은 구덩이에 빠지듯, 상대방에게 완전히 의존하며 자신을 잃어가는 것을 사랑이라고 여긴다는 거죠. 강연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의 연애나 결혼 고민을 들어보면 정말 그런 것 같아요.


"그 사람 없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제 전부예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상대방이 조금만 늦게 연락해도 불안해하고, 다른 사람과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 질투에 휩싸이고,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끝없이 관심과 확인을 요구하게 됩니다. 이것이 과연 사랑일까요?


프롬은 진정한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홀로 설 수 있는 능력'을 꼽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서정윤 시인이 말한 "홀로 선 둘이"의 핵심이에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고 안정된 사람이 되어야만, 상대방에게 진정한 사랑을 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강연을 다니면서 이런 경험을 자주 해요. 혼자 오신 분들 중에 정말 눈빛이 맑고 안정되어 보이는 분들이 계세요.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자신만의 취미와 관심사가 분명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길 줄 아는 분들이더라고요. 그런 분들의 연애 이야기를 들어보면,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살아가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혼자 있을 때 불안하고 공허해서 누군가로 그 빈자리를 채우려고 하는 것과, 혼자서도 충분히 만족스럽지만 좋은 사람과 더 풍요로운 삶을 나누고 싶어서 만나는 것. 이 둘의 차이는 정말 큽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홀로 서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SNS를 통해 끝없이 타인과 비교하게 되고, '솔로'라는 상태를 마치 부족하거나 실패한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팽배하죠. 하지만 프롬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사회적 압박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입니다.


프롬은 사랑을 기술이라고 했습니다. 예술이나 의학처럼 이론을 배우고 끊임없이 연습해야 하는 기술 말이에요. 그리고 그 기술의 첫 번째 단계가 바로 자기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기적이 되라는 뜻이 아니에요. 오히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타인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홀로 선 둘이의 만남"이라는 표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둘이'라는 말입니다. 홀로 서되 혼자가 아닌, 독립적이되 고립되지 않은 관계. 상대방을 통해 내 부족함을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충분한 두 사람이 만나 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 서로의 완전함을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그 완전함들이 만나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것 말이에요.


이런 관계에서는 질투나 의심, 소유욕이 들어설 자리가 없어요. 이미 각자가 완전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다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내가 줄어들지 않거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혼자 영화를 보러 가보기, 혼자 맛있는 식당에서 식사하기, 혼자 여행 계획을 세워보기. 이런 소소한 경험들이 쌓이면서 '혼자여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이 생겨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외로움이 느껴질 때마다 누군가를 찾아 그 빈자리를 채우려 하지 말고, 그 외로움과 마주 앉아 대화해 보세요. 그 안에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둘이 만나 서는 게 아니라,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다." 이 문장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는 참으로 큽니다. 혼자인 지금이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사랑을 준비하는 소중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주거든요. 오늘도 우리는 홀로 서는 연습을 계속합니다. 언젠가 만날 그 특별한 사람과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 위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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