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손이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손이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크고 단단한 손. 거칠지만 부드러운 손가락의 감촉.
"괜찮아."
목소리가 들렸다. 낮고 깊은 목소리. 귓가에 직접 닿는 것처럼 가까웠다.
"내가 있잖아."
서하는 그 손을 꽉 잡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온기를 잃고 싶지 않았다.
얼굴을 보려고 했다.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빛도, 윤곽도 없었다. 그저 목소리만 있을 뿐.
"누구...?"
"괜찮아. 서하야."
서하야.
그 이름을 부르는 방식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마치 수백 번도 더 불러본 것처럼.
손이 더 세게 잡혔다. 따뜻했다. 너무 따뜻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리고.
서하는 눈을 떴다.
천장이 보였다. 익숙한 방. 새벽의 침묵.
뺨이 차가웠다. 손을 대보니 젖어 있었다.
울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왜 울고 있는 거지?
베갯잇도 젖어 있었다. 얼마나 운 걸까.
"또 이 꿈이야."
서하는 중얼거렸다.
일주일째였다. 매일 밤 같은 꿈. 같은 목소리. 같은 따뜻함.
"누구지? 이 목소리는..."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었다. 가슴 한쪽이 저리도록 그리운데, 누구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
새벽 2시 17분.
레미니언스 62층 편집실. 도윤만 남아 있었다.
화면이 그를 비췄다. 푸른 빛이 그의 얼굴을 차갑게 물들였다.
손가락이 홀로그램 위를 움직였다. 서하의 파일. 과거 기록. 더 깊이. 더 깊이.
그리고 그것을 발견했다.
[윤서하_감정복원실험_세션07_20390428.vid]
영상 파일.
도윤의 손가락이 파일 위에서 멈췄다. 떨렸다.
'볼 수 없다.'
하지만.
'봐야 한다.'
클릭.
딸깍.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그 소리가 귓속에서 울렸다.
화면이 깜빡였다. 로딩. 로딩. 로딩.
심장이 빨라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니, 두드려졌다. 마치 누군가 안에서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영상이 재생됐다.
......................
같은 상담실이었다.
3년 전의 이 방.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햇살이 더 밝았다. 공기가 더 따뜻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었다.
젊은 도윤. 아니, 다른 도윤. 검은 셔츠는 똑같았지만, 표정이 달랐다. 눈빛이 달랐다.
그 옆에 앉은 여자. 윤서하.
긴 생머리를 묶은 모습. 수줍은 표정. 그녀가 손을 꼭 쥐고 말했다.
"편집사님, 정말 제 감정을 되살릴 수 있나요?"
영상 속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합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럼...?"
잠시 침묵.
영상 속 도윤이 천천히 말했다.
"하지만... 저는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왜요? 위험하다면서요?"
그가 웃었다.
미소였다.
현재의 도윤은 그 표정을 잊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게 웃을 수 있었다는 것을.
"당신이 다시 웃는 걸 보고 싶어서요."
영상 속 서하의 눈이 커졌다. 눈물이 글썽였다.
"편집사님..."
"괜찮아요. 제가 있잖아요."
그의 손이 움직였다. 천천히. 그녀의 손 위에 살짝 얹었다. 따뜻하게.
서하가 작게 웃었다. 눈물을 흘리면서.
톡톡.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화면이 흔들렸다.
영상 속 도윤이 급히 손을 거뒀다. 서하를 보았다. 입을 열었다.
"서하씨, 저는 당신이..."
쉬익.
영상이 꺼졌다.
......................
도윤은 움직이지 못했다.
화면은 검은색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여전히 그 장면이 남아 있었다.
미소 짓던 자신. 손을 얹던 순간. 그리고 끊긴 고백.
"나는..."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를... 사랑했던 건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차가운 손바닥. 뜨거운 뺨.
무언가 흘러내렸다.
눈물이었다.
"왜..."
도윤은 손등으로 뺨을 닦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눈물이 계속 흘렀다.
"왜 울고 있는 거지?"
기억도 없는데. 감정도 봉인했는데. 왜 가슴이 이렇게 찢어지는 것 같은 거지?
어깨가 떨렸다. 목이 메었다. 숨이 막혔다.
차갑게. 천천히. 눈물이 턱을 타고 떨어졌다.
책상 위에 작은 얼룩이 생겼다.
"...서하."
그 이름이 입 밖으로 나왔다. 자신도 모르게.
"서하야."
가슴이 무너졌다.
끼익.
문이 열렸다.
도윤이 급히 눈물을 닦았다.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서한비였다.
그녀는 도윤을 보았다. 젖은 눈가를. 떨리는 어깨를. 화면에 남은 영상 파일을.
"그 영상..."
한비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보셨군요."
도윤은 일어섰다. 비틀거렸지만 책상을 잡고 중심을 잡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죠?"
한비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고 단단했다. 하지만 그 안 어딘가에 미세한 감정이 스쳤다.
죄책감일까. 아니면 동정일까.
"당신과 윤서하는 연인이었어요."
"..."
"당신이 기억을 지우기 전까지는."
침묵.
도윤의 입술이 떨렸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비는 그런 도윤을 차갑게 바라보았다.
"3년 전, 당신은 그녀를 사랑했어요. 편집사가 의뢰인을 사랑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그녀를 거의 죽일 뻔했죠."
도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비가 화면을 가리켰다.
"그래서 당신은 저에게 부탁했어요. 모든 감정을 지워달라고. 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게 해달라고."
"내가... 그랬다고?"
"네. 당신이 선택한 거예요."
도윤은 벽에 기댔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한비가 마지막으로 말했다.
"하지만 도윤 씨."
"..."
"감정을 지웠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다음 화에 계속]
#SF로맨스 #기억상실 #재회로맨스 #근미래 #감정미스터리 #운명적사랑 #힐링웹소설 #완결웹소설 #12화완결 #먹먹한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