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진실이 펼쳐졌다.
"당신과 윤서하는 연인이었어요."
한비의 말이 공기 중에 떠 있었다. 도윤은 그 말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받아들이기엔 너무 무거웠다.
"왜..."
도윤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왜 내가 그녀를 사랑했다는 걸 기억 못 하죠?"
한비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죄책감일까. 후회일까.
"3년 전, 윤서하는 감정 폭주로 혼수상태에 빠졌어요."
"...뭐라고요?"
"당신이 그녀의 감정을 복원하려다 실패한 거예요."
한비가 한 걸음 다가왔다.
"실험을 무리하게 진행했죠. 그녀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당신도 그녀를..."
말이 끊겼다.
도윤의 눈앞에 무언가 스쳤다.
삐- 삐- 삐
경보음.
붉은 불빛이 편집실을 가득 채웠다.
"감정 코드 과부하! 즉시 중단하세요!"
AI의 기계음.
헤드셋을 쓴 서하가 의자에서 쓰러졌다. 몸이 경련했다. 입에서 피가 흘렀다.
"서하야!"
젊은 도윤이 달려갔다. 그녀를 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헤드셋을 벗겼다.
"서하야, 눈 떠! 제발!"
의료진이 뛰어들어왔다. 누군가 도윤을 밀쳐냈다.
붉은 불빛. 경보음. 절규.
도윤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손이 벽을 짚었다. 다리에 힘이 빠졌다. 무릎이 꺾이려는 순간, 한비가 그를 붙잡았다.
"앉으세요."
도윤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등을 벽에 기댔다.
"내가... 그랬다고?"
"네."
한비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에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당신의 사랑이 그녀를 죽일 뻔했어요."
......................
"서하는 일주일간 의식을 잃었어요."
한비가 계속 말했다.
"당신은 그 일주일 내내 그녀 옆을 지켰죠. 먹지도 자지도 않고."
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깨어난 나흘 후, 당신은 저를 찾아왔어요."
한비의 눈빛이 과거를 바라봤다.
수척한 얼굴의 도윤이 한비 앞에 섰다.
눈 아래 짙은 다크서클. 창백한 입술. 떨리는 손.
"제 사랑을 지워주세요."
한비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왜요? 서하 씨가 깨어났잖아요."
과거의 도윤이 고개를 저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워요."
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내가... 그녀를 죽일 뻔했어요. 내 욕심 때문에. 내 사랑 때문에."
"하지만..."
"지워주세요. 제발."
과거 도윤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 없이 사는 게 더 나아요. 그녀를 다시 위험에 빠뜨리는 것보다."
현재.
도윤의 손이 가슴을 짚었다.
"그럼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봉인이 풀리고 있는 거예요."
한비가 조용히 말했다.
"윤서하를 다시 만나면서."
도윤의 눈이 커졌다.
"봉인이 풀리면 어떻게 되죠?"
한비는 잠시 침묵했다.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돌아옵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3년 치의 사랑이. 억눌렸던 모든 그리움이."
도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그럼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
끼익.
문이 열렸다.
노크도 없이. 30대 초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부드러운 인상. 안경 너머로 보이는 걱정스러운 눈빛.
"서하는 괜찮습니까?"
도윤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시죠?"
남자가 한 걸음 들어왔다.
"조민혁입니다. 서하의 친구입니다."
"어떻게 여길...?"
"3일 전, 서하한테 전화가 왔어요. 울면서 당신 얘기를 하더군요.
'도윤 씨를 다시 만났는데 아무것도 기억 못 해'라고.
걱정이 돼서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하러 왔습니다."
민혁이 도윤을 똑바로 보았다.
"당신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도 알아요."
한비가 일어섰다.
"조 씨, 지금은..."
하지만 민혁은 도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편집사님."
그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서하는 당신을 보호하려고 먼저 떠났어요."
도윤의 눈이 커졌다.
"무슨..."
"사고 후, 그녀는 견딜 수 없었대요."
민혁이 천천히 말했다.
"자신 때문에 당신이 고통받는 걸."
......................
"서하는 알았어요."
민혁이 계속했다.
"편집사가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면 자격을 잃는다는 것도. 당신의 인생이 무너질 거라는 것도."
도윤의 손이 바닥을 짚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먼저 이별을 통보했어요. 그리고 당신 몰래 기억 삭제를 신청한 거예요."
"..."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요."
도윤의 입술이 떨렸다.
"...그럼 그녀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다시 시도했다.
"그녀도 날 사랑했던 건가요?"
민혁이 쓸쓸하게 미소 지었다.
"당연하죠."
그가 말했다.
"지금도요."
"지금도...?"
"기억을 지웠어도, 당신 생각을 멈출 수가 없대요."
민혁의 목소리에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그래서 다시 찾아온 거예요. 기억도 없는데 자꾸 당신이 떠올라서."
도윤은 벽에 머리를 기댔다.
무릎이 완전히 꺾였다. 가슴이 무너졌다. 숨을 쉴 수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지키기 위해 떠났다.
서로를 사랑했기 때문에 잊기로 했다.
비극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윤은 천천히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냈다.
손이 떨렸다.
의뢰인 파일에서 본 번호. 윤서하.
손가락이 화면 위를 맴돌았다.
누른다.
신호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
"여보세요?"
서하의 목소리였다.
도윤은 눈을 감았다.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편집사님? 무슨 일이세요?"
도윤의 입술이 열렸다.
"당신에게..."
숨을 들이마셨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짧은 침묵.
도윤이 마지막으로 물었다.
"당신은..."
목소리가 떨렸다.
"저를 아나요?"
전화 너머로 서하의 숨소리가 들렸다.
떨리는 숨소리.
그리고.
[다음 화에 계속]
#SF로맨스 #기억상실 #재회로맨스 #근미래 #감정미스터리 #운명적사랑 #힐링웹소설 #완결웹소설 #12화완결 #먹먹한로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