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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달 Oct 25. 2021

쓸 데 없는게 쓸 데 있어요

행정이 뭔데

'왕은 가도 행정은 남는다'라는 프랑스 속담이 있다. 행정의 의미를 잘 비유하는 글이다. 대학시절 전체 수업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문구다. 조직생활을 전제하는 이상 규칙과 절차는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고,  권력과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도 사라질 수 없다는 의미로 기억된다. 


한편으론 행정이 지닌 보수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비유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행정에서 새로운 뭔가를 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움 그 자체 보다 새로움을 바라보는 부정적 시선을 견뎌낼 용기라고 하는게 더 정확할것 같다. 새로운 생각을 하는게 힘든게 아니다. 일을 하다가 뭔가 새로운 걸 제시하면 안되는 이유부터 찾는 경우가 많았다. 확고했던 의지도 조금씩 무너지게 만든다. 


익숙치 않은 일을 피하고 싶은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에서, 특히나 공적인 일에서 가장 중요한것 중 하나가 '책임'이다보니 새로운 일 -> 불확실함 -> 책임소재 -> 저항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안되면 말고가 없기 때문이다. 일단 시작된 업무는 예산과 인력이 투입되기 때문에 책임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냥 해오던 대로 해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해오던 일만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기존 업무는 타당성을 인정받은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가 해오던 일이라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떨어지고,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루틴이 이미 있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변수도 예측(대응)하기 쉽기 때문이다.


기존 업무에서 벗어난 생각은 자연스럽게 '쓸데 없다'고 인식된다. 이미 만들어진 루틴대로 흘러가야 편한데, 새로운 변수를 만들어서 불확실성을 높이는게 부담스러운 것. 해오던 대로의 일이 곧 효율적이거나 바람직한게 아닐수 있는데 말이다. 특히나 안타까운건 특정 시기에 특정한 이유로 만들어진 절차가 후임자를 거치면서 당연한 관행으로 굳혀져 있는 경우. 법적으로 거칠 필요도 없는 검토절차가 끼어 있어 수달이 거치지 않고 취합부서로 넘기려 했더니 오히려 해당부서가 검토를 거치라고 종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권한있는 부서가 본인의 권한을 외부의 권한없는  조직의 검토서에 의존하겠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해오던 대로 해' 장벽을 넘어야 새로운 걸 담을 수 있다. 쓸데 없다고 치부된 것들이 제도개선의 실마리가 되거나 바람직한 목표를 이루는 중요한 '점'이 될 수 있다. 회의든 보고서든 진짜 문제를 해결하기위한 의지 없이 겉만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마다 쓸데 없다고 생각한 이야기들을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수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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