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의 누더기화
세상사 어떤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할 수 있을까. 이상적인 추진계획에 따라 일이 처리되기란 순정만화 로맨스처럼 비현실적이다. A부터 Z까지 기획 의도대로 순탄하게 진행되는 사업은 드물다. 예상치 못한 변수들을 만나 일부는 떨어져 나가고, 일부는 덧대지기도 한다. 중요한 건 본질을 지키는 것이겠지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면서 담당자는 의욕이 떨어질 때가 많다.
기한이 밀리기도 하고, 새로운 내용을 빼거나 넣으면서 누더기처럼 될 때도 있다. 대규모 행사에 지역 관계자들 얼굴 알리기용 축사, 인사 일정을 끼워 넣느라 정작 본 행사를 기다리는 관중을 지치게 만드는 모습을 생각해보시라. 물론 최종 결과를 놓고 볼 땐 큰 변수라고 할 순 없을지라도 준비과정의 담당자가 느끼는 자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함의 강력함
담당자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챙기는 일은 없다. 여러 부서의 사정과 해당 업무를 관장하는 상위기관을 비롯한 관련기관의 요청사항들을 반영하거나 협의하는 과정에서 업무는 너덜너덜해질 때가 많다. 힘 있는 보고서로 시작하지만 이 상황 저 상황 방어적인 수정 요청을 반영하다 보면 미지근한 보고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어찌 됐든 그 과정도 필요하다. 내 사업장이 있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서 의견을 반영해 조금씩 업무를 추진해 나가야 하니까.
결국 복잡하게 실타래는 풀리고, 정리가 된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저분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간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거부감이 든다. 잘 빠진 최종 결과물로 보고하고 싶은 생각에 조율이 필요한 이슈들을 묻어둔 채 잘 진행되고 있단 식으로 보고할 때도 있다. 상관은 안심하고 있지만 사실 누더기처럼 돼버린 업무 뒤치다꺼리에 담당자는 눈코 뜰 새 없을 것이다.
결국 수습하지 못한 채로 만료기한이 다 됐을 때 전혀 다른 분위기의 보고를 상관에게 할 땐 늦다. 애초에 문제가 있음을 보고 했다면 상관의 고민을 합쳐서 해결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상관은 다음 업무부터 담당자를 마냥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자꾸 꼬치꼬치 캐묻고 더 꼼꼼하게 동향보고를 받는 식으로 일을 챙기게 된다. 결국 담당자만 더 힘들어진다. 그야말로 악순환.
그래서 있는 그대로 보고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엉망인 보고서를 '네가 알아서 하라'란 식으로 보고하란 게 아니다. 노력해 봤으나 이런 이슈로 현재 진행이 더디며, 업무의 진행에 변수가 있음을 윗 상관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에 맞는 시야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방향 수정하는 결정을 내리거나 할 수 있다. 끙끙대며 묵혀 둬 봤자 결국 수면 위로 떠오를 이슈라면 애초에 솔직하게 보고하고, 상관이 해줄 수 있는 사항을 부탁하는 게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