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두?
야근을 밥 먹듯 하는 동기와 점심식사, 힘들지 않냐는 말에 그녀는 해맑게 웃으며 말한다. '사무실에 나 혼자 새벽까지 있으면 정말 힘들고 열 받을 것 같거든? 근데 과장님이랑 직원들 다 같이 야근하는 분위기니까 별로 안 힘들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말이다. 다 같이 밤새는 거보다 나 혼자 9시까지 일하는 게 더 힘들다. 게다가 그 일이 부서 전체와 관련된 일임에도 어찌어찌 내가 맡고 있을 때, 그 해당 업무 담당자는 6시 반에 퇴근하는 모습을 볼 때, 마침 금요일일 때... 심호흡 한 번과 커피 한잔이 절실해진다.
왜들 그리 다급한 거야?
수달에게 야근은 무슨 의미였을까. 대부분의 야근은 '시급함'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번 주까지, 내일 아침까지, 퇴근 전까지, 심지어 오늘 퇴근 전까지(지금 오후 4시 반인데...)라고 작성된 빨간 볼드체 문구에 가슴 철렁하던 시절이 있었다. 마치 '네가 할 일 빼곤 다 마무리됐으니까, 기한까지 제출안 하면 모두 다 니 책임'으로 받아들여지는 느낌이랄까.
자정이 넘은 시간 조용한 사무실에 혼자 남아 며칠 지나면 기억도 안 날 문장 한두 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나 좀 중요한 인물인 듯' 여기던 우쭐함이란 약발도 빠지고 번아웃이 찾아온다. 나만 일하는 거 같고, 나만 고생하는 것 같은 일상은 단연코 위험하다. 실제 그렇지도 않을뿐더러 푸념만으로 바뀌진 않기 때문에...
나부터 챙긴다
OECD의 'better policies for better lives'라는 슬로건처럼 내 삶도 중요하다. 수달은 one of them을 지향하고 있다. 회사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다는 '대리병'에서 벗어나 내 할 만큼 이상의 업무는 떳떳하게 안 하겠노라 말하려 한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은 타인의 노고를 모른다. ignore가 아니라 don't know다. '이건 제가 못할 것 같습니다'라 하면 '아 그렇구나'라며 넘어가는 경우도 많고, '이거 제가 할 일 아닌데도 진짜 고생히며 했습니다'라 해도 '아 그랬구나'라고 반응하는 경우도 많다. 내 노력과 가치, 성취감은 결국 타인이 결정해줄 일이 아니란 걸 이리치이고 저리 치여 보며 깨닫게 된 수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