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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달 Jan 07. 2022

그 라떼 참 쓴데요?

관행으로 내린 라떼

'라떼는 말이야' 그 라떼에 들어가는 원두는 관행이 아닐까. 관행의 사전 뜻은 '오래전부터 해 오는 대로 함'이다. 대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한다. 관행이 처음부터 부정적이었을까. 딱히 그렇지 않다. 시기와 상황에 따라 통용되던 사례들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관행이 됐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용되지 못한 업무방식은 애초에 도태되기 마련이다.


문제는 관행이 통용되던 맥락(context)이 바뀌었음에도 관행만 고수할 때다. 이제 막 조직생활을 시작한 새내기들이 그들의 시대와 맥락에 따른 사례로 관행을 만들어가려 하는데, 선배는 그게 불편하다. '라떼'에 기겁하는 근저에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맥락의 간극이 있다.


어떻게... 맥락이 바뀔 수 있니

연공서열을 예로 들어보자. 선임 순으로 인사 대우를 해준다는 관행은 경험이 많을수록 더 어렵고 많은 일을 맡는다는 게 전제되어 있다. 또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지금보다 단순한 업무체계에서 누가 봐도 수긍할 만큼 명확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인사 업무를 예로 들어보자. 10년 전 겸직 제한 관련 담당자와 오늘 겸직 제한 관련 담당자가 검토해야 할 겸직 종류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다르다. 애매모호한 영역도 생겨나고 있다. 예산 업무는 더하다. 부서별 편성 요구예산이 복잡해진다. '환경 자원을 활용한 문화관광 프로그램 개발'은 환경국 소관일까 문화국 소관일까. 판단의 기준을 세우기 어렵다. 홍보 업무도 예외가 아니다. 신문사, TV에 덧붙여 인터넷, SNS까지 관리해야 할 홍보매체가 늘고 있다. 과거 업무를 선형으로 비유하자면 오늘의 업무는 행렬(matrix) 같다. 맥락은 촘촘한 그물망처럼 복잡해졌다.


복잡해질수록 변수도 늘어나니까

오늘날 정부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를 난제(wicked problem)라고 하는 이유도 너무 복잡한 이해관계와 변수들이 얽히고설켜있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업무 난이도를 줄 세워 견줄 수 없게 된 건 두말할 필요 없다. 그런데도 여전히 주무부서, 사업부서, 지원부서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관행대로 인사 대우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개개 성과를 평가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을 포기하고 익숙한 과거 방식의 선형적 인사 대우가 이뤄지는 건 명백하게 나쁜 관행이다. 


그 라떼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에요?

'라떼는 말이야'를 외치는 바리스타에게 '거 유통기한 지난 거 아니오'라고 말할 용기는 어디서 와야 하는가. 꼰대스럽게도 가장 좋은 방법은 원칙에서 찾아야 한다. 원칙을 우회하는 관행이 판치는 난장판을 뚫어내는 건 규정이다. 논리로 관행을 이기기 어렵다. 관행으로 굳혀질 만큼 단련된 논리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관행에 공범이 되지 말자구

'법령에는 그렇지 않은데요?', '제 생각이 아니라 조례에 나와있습니다', '말씀대로 번거로울 순 있을 텐데  제가 경험이 없다 보니 규정대로 집행하려 합니다'  만큼 든든한 멘트가 없다. 물론 규정이 비합리적일 수 있다. 비합리적인 규칙을 개정 절차를 거쳐 고치면 된다. 규칙을 정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고 하더라도 비합리적인 규칙의 준수가 나쁜 관행보다 우월함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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