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조야 협박이야
업무라는 게 업무분장, 직제 등 듣기만 해도 딱딱한 규정에 따라 처리되는 것 같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다양한 변수가 있다. 베테랑이 업무협조를 구할 때 서면보다 대면을 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텍스트로 전달하지 못하는 무드가 만들어내는 변수는 무엇일까
대개의 업무협조는 '그건 어렵겠는데요'로 시작한다. 타 팀, 타 부서, 타 기관에 대한 협조 업무는 가외 업무인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 협조라는 단어를 '보태서 도움'이라 쓰고, '내 일 아님'으로 읽는 정도랄까. 입구컷 당하거나 이름만 걸쳐 놓는 식의 미진한 협조도 부지기수다. 문제는 협조를 구하는 쪽이 협조해주는 쪽보다 업무에 대한 간절함이 더 크다는 것. 이런 업무 경중의 비대칭은 우회적인 압박이나 점수로 줄 세우기 등의 방식으로 해소될 때가 많다. 이렇게 만들어진 협조체계는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래탑이다.
베테랑의 짬바
베테랑들은 퇴짜에 의미 없는 윽박도, 평가라는 협박도 들이밀지 않는다. '맞아요, 제가 생각해도 어려우실 거 같았어요. 이번 건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일 자주 같이 할 텐데 이따 사무실 한번 오실래요'라고 응수한다. 어리바리한 마음가짐으로 방문해 따뜻한 차 한잔 얻어먹으며 '네, 네, 네' 몇 번이 이어지면 어느새 한 움큼 일을 받아온다.
산전수전 겪은 고참일수록 신참 애환을 건드린다. '아 그 업무도 하세요? 그거 진짜 쉽지 않은데, 제가 전전 부서에서 그 업무 담당해봐서 알거든요. 그때 몇 개 자료 모아놓은 거 있는데 드릴까요?' 라던가 '아 그 부처 담당업무 제 동기가 하는데 한번 전화해 놓을게요. 깐깐하죠? 워낙 현안이 많아서 그런가 봐요' 라던가. 이야기가 무르익을 때쯤 '전화로 부탁한 그거요. 진짜 할 건 없는데 말로 하니까 많아 보이는 거거든요. 여기까지 해주면 나머지는 그냥 다 우리 쪽에서 할게요.' 라던가... '우리 부서 내용이 많으니까 써서 드릴게요. 나머지 한 파트만 채워주고, 같이 보고 들어가 주시면 어때요' 라던가... 말이다.
사실은 가장 합리적인 의사결정, 협조
어제 으르렁 거리며 싸운 담당자와 1년 뒤 같은 부서에서 근무할 수 있다. 순환보직의 수레바퀴 속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아군도 없는 법. 언젠가는 나도 협조를 구할 일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 협조에 부정적인 건 대개 개인적인 차원이지만, 협조로 쌓은 신뢰는 개인을 넘어 부서 차원으로 확장된다. 좋은 평판은 스노우볼이 되어 다음 나의 행보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협조 업무로 파생되는 다양한 네트워크는 내 업무 운신의 폭을 넓혀준다. 업무 추진에 필요한 잡다한 일은 협조를 구하는 쪽에서 감당하기 때문에 부담도 적다. 굳이 따져보자면 협조에 드는 비용보다 실익이 크다는 것. 협조 좀 해주세요.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