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진 상대성 이론
직장에서 가장 민감한 보상은 승진이다. 승진에 민감한 이유의 대부분은 여부보다 시기에 있다. '빨리 승진하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남들보다 늦게 승진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란 것. 희소 자원이 존재하는 모든 시장이 그러하듯 누군가 더 빨리 승진하면 다른 누군가는 더 늦게 승진하게 된다. 앞서기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한 경쟁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그러다 보니 하는 일을 잘 드러내는 게 중요해진다. 묵묵히 일만 하면 순진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자기 PR도 적성에 맞아야 하는데 수달처럼 내성적인 사람들은 그러자니 온몸이 뒤틀린다. '알아서 챙겨주겠지'로 정신 승리하는 게 고작이다. 그 사이 어깨가 무거워진다. 어느새 누군가 수달을 밟고 있다.
소문난 잔치집에서 설거지 하기
대개 새로운 업무의 시작점에 가시적 성과가 도드라진다. 샴페인을 터뜨리든 인사 말씀을 하든 시작의 축배를 들고 난 이후의 연회는 그저 흘러갈 뿐인 것처럼. 대개 이런 멋진 기획으로 성과로 인정받은 담당자는 높은 평가를 받거나 승진하면서 자리를 옮긴다. 순환보직 때문이다. 박수갈채받고 떠난 담당자의 빈자리에서 서빙하고 설거지하는 후임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순환보직은 조직 구성원을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여러 다른 업무에 전보 또는 배치시키는 것을 말하는데, 조직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2~3년 주기로 이뤄진다. 연초에 보직을 받았다고 가정하자. 처음 1년 동안은 기존 업무를 파악하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그렇게 업무에 익숙해지면 연말에 차년도에 추진할 새로운 사업이나 정책을 기획할 여유가 생긴다. 잘 기획된 업무는 부서나 상관의 피드백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서 예산 확보 등 추진동력을 얻는다. 정성을 들인 결과 성과가 나타나고, 해당 업무 기획자는 높은 평가를 받거나 승진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집행은 후임자가 담당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업무와 담당자 사이클이 일치하지 않을 때 생기는 웃픈 현실이다.
업무도 졸업을
성과로 인정받기 쉬운 새로운 일만 찾게 되면 업무량은 점점 많아진다. 기존 업무는 개인이든 팀이든 포용 가능한 업무량의 절대치가 있기 때문에 기존 업무는 등한시되고 유사한 사업(특히 행사)만 양산되는 경우가 많다. 새로운 사업으로 주목만 받으려는 악순환에서 지혜롭게 생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미 목적을 달성한 사업의 경우에도 관성적으로 집행되는 사업들은 과감히 졸업시킨다. 뚝 끊어 내는 게 아니라 다른 업무로 계승시키는 게 중요하다. 적용 대상이 다른 경진대회 사업 2~3개를 한 부서가 집행하고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각 경진대회가 몇 년째 이어오며 자리를 잡았다면, 이제 모든 대회를 하나의 대회로 아우르는 설계를 해보는 것. 화학적인 결합이 어렵다면 물리적으로 합해 보는 것이다. 경진대회 주간을 정하고, 한 번의 행사 준비로 3개 행사를 각각 시행할 때 들어가는 중복비용을 줄이는 식이다. 유사한 집행사업은 서로가 시너지가 되도록 연결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포럼과 연구용역이 각각 달리 진행되고 있다면, 포럼에서 해당 용역의 주제를 발제로 다뤄보는 방식으로 연결시켜 보는 것이다. 기존 업무를 정리하고 통합하는 아이디어로 새로운 기획의 방향을 잡으면 성과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