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공간의 마지노선, 칸막이
열린 조직 문화를 기치로 칸막이를 없애자 책이나 화분, 보고서 더미들로 벽을 쌓는 사무실 풍경을 소개한 적 있다. 공유형 오피스처럼 운영되는 직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비슷한 풍경일 테다. 칸막이는 업무공간에서 꿈꾸는 사적 공간의 마지노선이다.
물론 칸막이 하나로 사생활을 지킬 수 없다. 1제곱미터도 안 되는 칸막이로 사생활이 보호되리라 실제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 하루 대부분을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지내는 동료에게 보내는 상징적인 신호일 테다. 많은 감정과 일상을 공유하겠지만 각자의 선을 지키자는 경계선 정도랄까.
선 넘으셨으니 가져가세요
문제는 공과 사를 구분 짓는 용도가 아니라 공과 공 사이도 구분 짓는 용도로 작용할 때다. 크게는 기관 사이, 작게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소통과 협업에 소극적인 행태를 일컫는 '칸막이 행정'이 그것이다. 학창 시절 짝꿍과 붙어있는 책상을 쓸 때 긋는 선과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학창 시절엔 선 넘으면 '다 내 꺼' 였는데 이 칸막이는 선을 넘으면 '다 네꺼'란다.
패턴은 대략 이러하다. A부서에서 업무 기획 -> 보고, 수정, 보고, 수정 거치며 무르익음 -> 그 과정에서 (더 정확히는 기획 단계에서 좀 더 사려 깊었다면 협조가 필요함이 예상됐을 수 있는) B 부서 협조가 필요함이 검토됨 -> B부서에 협조 요청(이미 윗선에 보고돼서 추진 여부에는 영향을 미칠 수 없음) -> B부서의 '이제 와서 무슨?' 반응 -> 윗선 보고 완료됐음을 강조하며 압박 -> B부서의 업무 뭉개기 및 소극 협조 시전
차 한잔부터 시작하세요
칸막이 행정을 완전히 해소할 순 없지만 최소화하는 방법은 시작부터 함께 하는 것이다. 물론 시작부터 딴지가 걸리는 부작용이 있겠지만 업무가 무르익고 찍어 누르듯이 협조를 구할 때 생기는 양자 간 생채기보다는 낫다. 앞서 말했듯 칸막이 있어봐야 1제곱미터도 안된다. 칸막이 너머로 초콜릿도 보낼 수 있고, 차 한잔도 건넬 수 있다. 살짝만 고개 틀면 서로 마주 보며 대화도 나눌 수 있다. 부서 간, 기관 간에도 마찬가지. 따뜻한 차 한잔의 여유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수달은 오늘도 탕비실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