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사하시네요
직장생활 시작하며 처음 접한 표현과 단어들이 많다. 그중 '간사'라는 단어와 관련된 이야기다. 자기 이익을 위해 나쁜 꾀를 부리는 등 바르지 않은 마음이라는 뜻을 가진 간사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는 '단체나 기관의 사무를 담당하여 주도적으로 사무를 맡아 처리하는 사람'이다. 보통 위원회나 협의체처럼 다양한 사람, 기관이 함께 어떤 안건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조직에서 많이 쓰인다. 회의를 준비하고, 안건을 준비하고, 회의의 결과를 정리하는 일을 한다고 보면 된다.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호숫가에 우아하게 노니는 백조의 '다리' 정도 되겠다.
갑이 될 수도 을이 될 수도 있는 간사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의미있는 과정. 그러나 여러 사람이 모인다는 것만으로 좋은 논의가 나오는 건 아니다. 누군가 한 명은 배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부단히 조타수(操舵手) 역할도 하고, 노도 저어야 한다.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그럴싸한 결과물들은 간사 역할을 한 담당자의 피땀 눈물 + 야근의 산물이라 바도 무방하다.
간사가 갑이 될 순 없을까. 답을 간사의 사전적 의미에 나오는 '주도적'이라는 단어에서 찾아보려 한다. 일을 마무리할 책임이 간사에게 있다면 어떻게 마무리할 지에 대한 권한도 있기 때문이다. 그냥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할게 아니라 일이 주어지는 시작단계에서부터 '어떻게 마무리 하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다.
지나치게 갑질하진 말자
베테랑 실무자들은 초장부터 기선을 제압한다. 편집 서식을 통일하고, 참여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업무 할당을 명확하게 한다. 단순히 '너는 공격하고, 너는 수비해'가 아니라 '넌 1번 타자, 넌 1루수 수비'라고 명확하게 할당하는 것이다. 그래야 주어진 업무에 맞는 구체적인 전략이 나올 수 있다.
협업 활성화에 대해 a, b, c부서가 참여하는 TF 총괄 작업을 하는 실무자를 가정해본다. 초짜는 협업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 아이디어를 내라고 세 부서에 던질 것이다. 애매모호한 목표만 덜렁 던져지면, 천차만별의 자료가 온다. 간사가 원하는 자료를 받을 때까지 실랑이도 각오해야 한다.
베테랑은 해당부서에서 낼 수 있고, 내야만 하도록 요령껏 요청한다. a, b, c 세 부서의 특성을 고려해 협업의 컨셉을 미리 짜서 던진다. a부서가 홍보부서라면 '기획보도 활성화를 위한 주요 부서 정기 협업회의(안)'에 대해 제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가능한 아이디어면 채택할 것이고, '이게 뭔 소리냐'는 반응이면 그 아이디어가 관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할 것이다. 날 것의 예를 들었지만 실제 총괄업무를 수행하는 간사, 또는 간사 조직은 단순히 잡무만 챙기는 실무자 역할(노젓기)만 하는 게 아니라 '주도적'으로 판을 짜고, 기획을 하는 역할(조타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 일하는 것 같은 억울함을 뒤집자
세상에 나만 일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면 생각을 달리 바꿔보는 것이다. 나만 일하니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도해 나갈 수 있는 틈을 찾는 것이다. 간사가 할 수 있는 운신의 폭 안에서 충분히 가능한 영역이 될 것이다. 천성이 소심한 수달은 '저 사람 제멋대로 일한다'란 소리 듣기 싫어서 예로 든 것처럼 하진 못한다. 다만 전체적인 방향을 기획하고, 그 방향에 맞도록 부서의 시야를 조정하는 정도의 노력으로 내가 끌고 가는 이 업무가 의무만 가득한 일이 아니라 책임감으로 끌고 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 노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