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해서
'수달인 보고서에 '~을 통해'가 너무 많아. 많이 쓰지 않는 게 좋아' 첫 보직을 받고 군기 바짝 들어 쓴 보고서를 본 과장님 말이었다. "'~을 통해'라는 워딩은 자신 없을 때나 쓰는 표현이니 안 쓰는 게 좋아"
과장님 말씀을 듣고 보니 보고서가 온통 '통해서' 투성이었다. '협의를 통하여', '추진을 통하여'... 인지도 못한 채 습관이 된 것. 그 뒤 '통해서'란 표현을 의식적으로 쓰지 않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모 국장님 글쓰기 강의를 듣게 됐는데 역시나 국장님도 "통해서"는 지양해야 될 표현 중 하나라 셨다. 이유도 알게 됐다. "통해서"는 일본식 표현이며 설명해야 할 내용을 뭉뚱그리는 표현이기 때문에 '통해서' 앞뒤 관계를 명확하게 설명하는 다른 표현으로 바꾸는 게 낫다는 것.
C도서관은 작년부터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보유 장서에 대한 e-book 서비스를 실시했다. 지역주민이라면 누구나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e-book 형태로 책을 대여할 수 있는데 실적이 매우 저조하다. 담당자는 e-book 서비스 접근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서비스 접근성은 최종 목적(B)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여러 가지를 고려할 수 있다.
1. 모바일 전용 애플리케이션을 제작
2. 홈페이지 최상단에 e-book전용 게시판을 별도로 개설
3. 주민 대상 오프라인 홍보 실시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수단(A)들이 아이디어 회의에서 나왔고 최종적으로 오프라인 홍보를 실시하는 것으로 판단을 내린 담당자는 보고서에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담았다.
'홍보(A)를 통해 서비스 접근성(B)을 확대'
보고서를 본 과장님은 담당자에게 이렇게 물을 것이다. '그래서 홍보를 어떻게(how) 한다는 거죠?'
'홍보(A)를 통해'라는 표현은 다양한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홍보계획을 세운다는 의미인지? 이미 계획은 세워졌고, 계획 내용대로 홍보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인지? 온라인 홍보인지? 오프라인 홍보인지? 불명확하다. '홍보계획을 통해' 라 썼다 해도 마찬가지다. 홍보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것인지? 세워진 홍보계획을 잘 지켜나가야 된다는 것인지? '오프라인 홍보를 실시(A)해 서비스 접근성(B)을 확대'라고 정확하게 표현해 주는 게 낫다. 보고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명확하게 표현되어야 한다. 보고서 결론은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제도 시행이든, 법령 제정이든, 행사 개최든 말이다.
'~을 통해'로 수단을 뭉뚱그릴게 아니라 목적(서비스 접근성을 확대)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오프라인 홍보 실시)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게 좋은 것이다.
많은 보고서에 '~통해'란 표현은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았을 때, 표현 앞뒤의 관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할 때 쓰는 경우가 많다. 더 고민하고 정보를 파악해서 글을 쓰면 자연스레 줄어들 표현이다.
구두보고 시에도 마찬가지다. 'A부서 B 씨를 통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는 얼핏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수 있는데, 정확한 경위를 설명해야 될 경우라면 '통해'가 의미하는 바를 좀 더 명확하게 써줄 필요가 있다. 내가 궁금해서 연락한 건지,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건지.. 상황에 따라서 상관에게 중요한 정보일 수 있으므로 명확하게 표현해줘야 한다. '제가 A부서 B 씨에게 연락을 해서 알게 된 사실이다'라고 경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관하여, 대하여
수달은 하루 동안 가장 많이 읽는 글이 보고서다 보니(보고서를 많이 본다기보다 다른 글을 거의 안 읽음 :D) 일상생활에도 보고서에나 씀직한 표현을 많이 쓴다. 온라인 쇼핑몰 문의글에 '사장님 제품 배송과 관련해서 궁금한 게 있습니다"라 쓰는 식이다.
"~에 관하여", "~에 대하여"는 보고서에서 지양할 대표적 표현중 하나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한 번에, 뚜렷이 드러내지 못하거나 불필요하게 문장이 길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생각 없이 썼던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면 "관하여, 대하여"라는 표현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썼기 때문이다. 손은 뇌보다 빠르니까? 고민도 전에 "관하여"를 써버려 더 적절하게 썼어야 할 단어를 지나친 경우가 많다.
가급적이면 쓰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차근차근 살펴보고 , 어떻게 바꿔 사용하면 좋을지도 정리해보려고 한다.
사전을 검색하면 그 뜻이 다음과 같다.
'관하여'
1. 말하거나 생각하는 대상으로 하다.
'대하여'
1. 마주 향하여 있다.
2. 어떤 태도로 상대하다.
3. 대상이나 상대로 삼다.
두 단어 모두 해당 단어 앞에 붙는 대상을 '받아주는' 역할을 한다. 받아준다는 표현은 추상적이니까 좀 더 쉽게 풀어써보면 이런 식이다.
'A에 관하여 B, 바로 C'라는 표현을 뜯어보면,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C다. '관하여, 대하여'는 A가 자신이 전달하려는 목적 C의 주어나 목적어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도의 역할을 한다. 수영장 물 온도가 너무 낮다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은데, '수영장에 관하여할 말이 있습니다. 물 온도가 낮네요' 또는 '수영장 물 온도에 관하여 드릴 말이 있습니다. 너무 낮네요' 식으로 쓰이게 된다는 점이다. '수영장 물 온도가 낮아요'라고 하면 되는데 말이다.
'관하여', '대하여'라는 표현 때문에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 C가 단박에 나오지 않게 된다.
'관하여', '대하여'는 '그 단어 앞에 붙은 단어가 앞으로 이야기될 겁니다.' 정도의 안내멘트 느낌이랄까. 숨을 고르는 느낌이랄까. 준비하라는 느낌이랄까.. 핵심을 정확하고 빨리 전달해야 하는 보고서에 쓰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정말 많이 쓰고 있다는 것.. 수달 역시 반성합니다...
몇 가지 예를 더 들어보자.
'배송과 관련하여', '운영에 대하여', '회의에 관하여'라는 표현 뒤에는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이어질 것이다.
'배송과 관련하여 요청사항이 있습니다.'
'운영에 대하여 협조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회의에 관하여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정도가 될 것이다.
'관하여', '대하여'가 들어간 문장 뒤에 요청사항, 협조사항, 특이사항을 다시 한번 전달해야 하는 문장 구조가 되는 것이다.
'배송과 관련하여 요청사항이 있습니다. 오배송된 거 같습니다.'
'운영에 대하여 협조사항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홍보실은 보도를, 운영지원과는 회의실 대관을 부탁드립니다.'
'회의에 관하여 특이사항이 있습니다. ㅇㅇㅇ부는 실장님이 대참 한다고 합니다'
글이나 말을 늘어지게 하는 '관하여', '대하여'를 쓰기보다는 핵심 내용을 빨리 던지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좋다.
'ㅇㅇㅇ를 주문했는데 오배송되었습니다.'
'홍보실의 보도 협조와 운영지원과의 회의실 대관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ㅇㅇㅇ부는 실장님이 회의 대참 합니다'
실제 많은 보고서에 "관하여, 대하여"가 쓰이면서 문장은 길어지고 딱딱해진다.
수달 스스로도 '관하여', '대하여'라는 딱딱한 문체를 구사해야만 '보고서답다'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했을 것이다. 괜한 예의를 차리는 느낌을 무의식 중에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고서는 태생이 글을 쓰는 사람을 위한 글이 아니라 글을 보는(to see) 사람을 위한 글이기 때문에 전하고자 할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글쓴이 의도를 두 번에 걸쳐 아는 것보다 한 번에 아는 게 더 효율적이고, 정확하다.
다만 여러 가지 전달할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을 때 '관련'이라고 쓰는 표현은 적절하다. 'ㅇㅇㅇ 관련 참고자료'에는 'ㅇㅇㅇ 경과' , 'ㅇㅇㅇ주요 내용', '향후 대응방향' 등 과련 앞의 단어가 구심점이 된 내용들을 묶어서 칭하기 좋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