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작

대충 그린 것 같나요? 아마 맞을 겁니다.

by 김수달
역사적인 김수달 1편


생존점

이런 그리다 만듯한 그림도 브런치에 올라오냐고 혀를 차며 뒤로 가기를 누르기 전에 잠시만 수달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느새 그를 토닥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을테니까. 성의 없이 그린 것 같고, 생각나는 대로 쓴 게 분명해 보이는 대사. 고칠 생각 없어 보이는 삐뚤빼뚤한 외곽선으로 그려진 네 컷 만화는 만 5년 직장생활로 번아웃 직전인 김수달이 출근을 앞둔 일요일 저녁 유튜브 시청용으로만 써왔던 아이패드로 쏟아 낸 '생존점'이다.


증명

첫 시험 후 10년이 지난 뒤에야 김수달은 공무원이 됐다. 이것저것 핑계 삼아 수험기간을 줄이기도 했는데 이젠 구차하게 변명하지 않기로 했다. 수험기간 동안 사기업에 취직해 본 적 없다. 해본 적 없지만 도전했어도 못했을 것 같다. 천만다행으로 밥벌이하고 사는 김수달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사회생활이 자격지심으로 다가왔을까. '증명'이란 말을 달고 살던 김수달은 스스로를 일로 내 몰았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거참 열심이었다. 일 없을 땐 시키지도 않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까지 말이다. 아마 자격지심을 이겨내려는 발버둥이었으리라. 일에 매몰된 생활로 '나'를 잃어버린 것 같던 그날 저녁, 유튜브 시청용으로만 쓰던 아이패드를 만지작 거리던 그는 기어이 4컷 만화를 토해냈다.


월요병

붙여만 준다면 산간 오지서 무급으로 일해도 좋다 생각하던 때도 있었다. 참으로 간사한 동물인 것이 지금 수달은 월요일이 너무 힘들다. 힘들단 표현마저 부족하리만큼 무기력한 하루. 커피 한잔 타고서야 회사생활을 겨우 시작한다.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다. 조직에 누가 되진 말자는 마인드로 일한다. 퇴사하고 싶단 생각도 가끔 하지만 그건 진심이 아니다. '힘들면 퇴사해'라고 스스로에게 극단적인 처방을 내리면 가슴속에선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수험기간만큼은 다녀야 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며 현재 상황의 상대적 우위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음에도

하루 중 수달이 가장 많이 쓰는 도구는 키보드다. 기본으로 보급되는 키보드는 '키 입력 장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자판을 내려칠 때 만이라도 '재미'나 '만족' 이란 걸 느껴보고 싶어 기계식 키보드를 샀다. 도망칠 수 없기에 즐기는 거랄까. 꽤나 비싼 기계식 키보드를 샀다. 문제는 키보드 바뀐다고 보고서가 더 잘 써지진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렴 어때, 보고서 첫 줄부터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어도 찰칵거리는 키보드 소리가 오늘 하루를 멋지게 보내고 있다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니까. 처리해야 할 문서와 내부망 사이트 창만 10여 개. 소심한 김수달은 일기장을 꺼내 끄적여본다. "해야만 하는 일이 가장 하기 싫다."


시작

내놓기 부끄운 수준이지만 '시작'이란 가치를 영원히 간직할 김수달 툰 1화를 브런치 첫 글로 등록하면서 '김수달 생존기'를 연재해 보려 한다. 1화로 바닥을 찍었으니 부담 없이 연재할 수 있을 것 같다. 툰은 인스타에도 연재 중이다.


김수달 생존기 인스타툰

https://www.instagram.com/sudarlkim/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공직생활 동안 경험하고 느낀 바를 만화로 또 글로 기록하고 있다. 직업 특성상 스스럼없이 담아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자기 검열의 연속이겠지만 누군가에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경험을 공유한다는 마음으로 연재하려고 한다.


김수달, 오늘 밤도 자리에 누우며 되뇐다.

"어른은 자고로 담대하게 일요일 저녁을 맞이해야 하는 법이야..."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