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출제 의도
문제풀이의 기본 중 기본이 '선지를 꼼꼼히 봐야 함'이다. '옳은' 것을 고르란 건지, '옳지 않은' 것을 고르란 건지 정반대로의 답이 내려지지 않도록 선지를 잘 봐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장이 아닌 한 윗사람이 낸 불친절한 지시 의도를 잘 파악해야 쓸데 있는 곳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다.
어젯밤 공부한 내용이 시험에 떡하니 나오니 가슴이 뛴다. '올게 왔다'.
쿵쿵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문제를 꼼꼼히 읽어보지도 않은 채 답안을 작성하고 시험장을 나왔더니 수달은 형편없는 점수를 받았다. 어떤 때는 문제가 너무 어려워 어떻게든 문제 안에서 단서를 찾아보려 한 글자 한 글자를 보물찾기 하듯 들여다보며 꾸역꾸역 답을 썼더니 점수가 좋았다. 전자는 문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아는 내용만 신나게 쓴 경우이고 후자는 내용을 잘 몰라도 문제를 꼼꼼히 읽으면서 최대한 그에 맞게 쓰려고 고민한 덕분이다. 내가 아는 것만 쓰다 보니 과정은 신났으나 결과는 참담했던 것
파일로 줘봐
보고서도 마찬가지다. 상관이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맥락(context)을 잘 고려해야 한다. 모든 지시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황 속에 그 이유가 숨겨진 경우가 많다. 그런 맥락을 읽지 못하면, 적어도 그런 맥락에 대한 고민이 없으면 소위 '핀트'가 나간 보고서가 만들어진다.
'코로나 상황에서 이번 행사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한번 검토해봐'라는 지시를 어떻게 이해하고 보고서를 준비해야 할까. 꼼꼼한 시간계획을 원하는 걸까, 행사 여부를 검토해 보란 것일까? 만약 상관의 의도가 후자였다면 의도와는 정반대의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하게 될 것이다.
최악은 보고서를 본 상관이 파일로 달라고 할 때다. 한두 군데 피드백을 줘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할 때 본인이 고치는 게 낫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데 절대적인 수준이 떨어진다기보다는 '핀트'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크게 낙담할 필요는 없다.
모든 초안은 쓰레기다
그렇다면 애초에 상관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최대한 빨리 초안을 만들어 보고하는 건 어떨까. 좋은 방법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수많은 수달들은 자신의 볼품없는 초안을 과장님께 들고 가기 싫다. 쏟을 수 있는 역량이란 건 모조리 쏟아붓고서야 '초안 정도 수준으로 작성해봤습니다'라고 하고 싶은 게 그들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다.
화장 안 한 얼굴 보듯 절 보시지 마세요
과장님 입장에서도 원하는 방향이 아니면 빨리 피드백을 주기를 원한다. 담당자가 머리 싸매며 애써 만든 보고서를 죄다 뒤흔드는 걸 좋아할 상사는 많지 않을 거니까. (없단 소리는 아니다...) '너무 오래 붙들지 말고, 쓰고 싶은 대로 써서 빨리 가져와 봐'라는 말씀이 수달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아마도 초안 수달이 너무 애먹지 않도록 초안 수준에서 빨리 방향을 잡고 싶으셨나 보다.
수달은 왠지 모를 서운함과 반항심이 생겼다. 그 탓일까? 의식의 흐름대로 보고서를 싸질러 갔더니 과장님 동공이 흔들리셨다. 화장 안 한 얼굴을 본 것 마냥 당황하시며 조심스레 입을 여셨다. '이거.. 쓰다 말고 가져온 건 아니지?'
밸런스가 중요
쓰다만 느낌을 줄 정도는 아닌 초안이면서, 방향이 틀리더라도 핸들을 꺾을 수 있는 정도의 초안이어야 한다. 쉽지 않은 문제다. 담당자 고민의 흔적도 없이 그야말로 텍스트만 담았다고 초안이 되는 건 아니니 말이다. 과장님 만큼 고민하고, 공부를 하는 게 맞는데 자기 주도 업무추진이 쉽지 않다.
먼저들 들어가세요
과장님이 틀어주신 방향으로 다시 보고서를 쓰려고 하면 보고서만 틀리는 게 아니라 온 몸이 뒤틀린다. 애초에 생각한 적 없는 방향이다 보니 어렵고 자존심도 상하고 심신이 피로해진다. 그럴 때마다 수달은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한잔 탄다. '김수달, 네가 무슨 보고서의 신이야? 여긴 정글이야 우쭈쭈 해줄 사람도 없으니까 쓸데없는 자존심 부리는데 에너지 낭비하지 마, 그냥 해보는 거야' 그래도 퇴근하시는 분들... 야근을 위한 전기에너지는 써야 하니 불을 끄지 말고 퇴근해 주세요.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