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거야
소신발언
공공기관이 여는 행사에 참석해본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딱딱하다'. '거기서 거기다', '천편일률적이다'. 일반화 할 순 없지만 대개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공공기관 행사라고 하면 청색계열 현수막과 포스터, ㄷ자로 정렬된 테이블과 의자, 뻔한 식순과 진행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그렇지?
행사 = 상수
공공기관 행사는 '무탈하게 지나가야 하는 일'인 경우가 많다. 모든 담당자는 자신의 일이 좀 더 의미 있길 바란다. 예전과는 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고, 새로운 기획을 넣어보고 싶은 생각이 없겠는가. 그런데 행사가 성공적인 때 돌아오는 만족감보단 문제가 생겼을 때 오는 타격이 상대적으로 크다 보니 전자 보단 후자를 선호한다. 문제없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담당자의 우월 전략이 무엇일까? 작년 자료, 전임자 자료를 꺼내보는 것이다.
새로움 = 변수
한마디로 말해 '새로움'에 대한 유인기제가 굉장히 낮다는 것.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일부러 변수를 만들고 싶어 하지 않고 싶어 하는 심리일 것이다. 김수달은 그런 업무 프로세스에 염증을 느꼈다. 기왕 할 거면 예전관 다른 기획을 하고팠다.
당시 '옥상'이라는 콘셉트가 유행했다. 음악 공연이 대부분이었지만 충분히 행사에 적용해 볼만했다. 마침 수달이 준비해야 할 행사가 있었는데,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라 잘 어울릴 거라 생각했다. 청사 내에 마련된 홀을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수달은 과장님께 '옥상'에서의 행사를 건의했다.
관전 모드
옥상 뒤편엔 적당한 크기의 야산이 있어 관람석에서 무대를 바라보면 꽤나 운치 있을 것이다. 무대 벽을 오히려 세우지 않는 게 더 멋질 것 같았다. 장소는 옥상이고, 벽 없는 무대를 설치하겠다고 했더니 사람들은 의외로 별다른 의견을 주지 않았다. 아마도 변수가 많은 행사에 괜히 개입되고 싶지 않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도 그럴 것이 야산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결과만 생각했지, 밑그림도 없는 새하얀 도화지에 그림을 그린 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이건 아니다'라고 깨달았을 땐 이미 늦었다. 행사장으로 활용될 것을 염두한 인테리어가 되지 않은 옥상이란 공간에 무대를 설치하고 의자를 놓는 거부터 쉽지 않았다. 무대와 각종 음향장비, 그늘막, 의자를 일일이 엘리베이터로 날라야 했다. 안전 패드를 엘리베이터에 설치하겠다 해도 청사관리 부서는 엘리베이터를 쓰지 못하도록 했다. 화가 난 설치업체를 다독이며 겨우겨우 엘리베이터 하나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장비들이 옥상으로 올려졌다.
행사가 시작되고는 햇빛이 너무 쨍하지 않을까, 바람이 너무 불진 않을까, 사람들이 더워하진 않을까, 비가 오진 않을까 오매불망 별 탈 없이 끝나기만을 바랬다. 행사가 무사히 끝나고 정리된 옥상 화단에서 김수달은 생각했다. '하던 대로 했을 때랑 결과는 결국 비슷하구나'
그래도 새로운 걸 하고 싶어
옥상 행사라는 작은 기획을 해보고 실행해보면서 느낀 게 있다. 기획을 구체화하는 집행이 기획만큼이나 어렵고 힘들다는 점이다. 그래도 수달은 여전히 새로운 것을 원한다. 똑같이 일해서 지루한 생존을 할 거냐 힘들더라도 창의적인 생존을 할 거냐 묻는다면 여전히 후자다. 어떤 회의, 행사든 시간을 들여서 참석한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수달이 생존하는 원동력이 되어 왔음을 앞으로도 소개해 보고자 한다.
ps. 물론 그때 이후로 야외행사는 가장 후순위로 놓고 있다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