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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16. 2019

내가 남편과 재혼을 했나?

남편과 자식 사이에서 나는 등이 터졌다.

결혼 전에 부모가 될 자격시험이나 교육을 받고 결혼한 사람 손들기?

과연 몇 명이나 손을 들었을까요?

우리는 대부분 부모가 될 때 부모 교육이란 것을 받고 부모가 되지는 않습니다.

결혼을 해서 서로 사랑하며 생활하다 어느덧 아이가 생긴 것을 알게 되고, 아이를 낳은 후에는 자연스럽게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되니, 특별한 자격을 갖추지 않더라도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습니다.


'난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부모가 될 거야' 라며 부모 교육을 따로 받고, '그래, 이 정도면 됐어'하고 자신감이 충만했을 때 아이를 낳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는 뜻입니다.


부모가 된 후에는 비로소 현실이 된 육아 앞에 좌절하며 책을 통해 혹은 먼저 부모가 된 인생 선배에게서 또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육아 정보를 수집한 뒤 아이를 키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애는 부부의 시행착오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그런 시행착오 좀 겪으면 어떴습니까?

잠이 부족해 아이를 안은 채 꾸벅꾸벅 졸다가도 아이의 웃는 모습 한방이면 그만이고, 속상해서 화를 버럭버럭 내다가도 곤히 잠든 모습 하나면 마음속 분노가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을요.

아이들은 그렇게 부모를 울게도 하고 웃게도 하면서 자라납니다.

부모는 그런 아이들을 키우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고, 한편으론 대견해하면서 같이 자라게 되지요.

아니, 아이가 자란 만큼 스스로도 자란다고 착각을 하며 살았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곧 깨닫게 됩니다. 아이는 자랐지만 자신은 자라지 않았다는 걸.


난, 그날, 그 말을, 듣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습니다.


"자식이 해 준 게 뭔데.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지 않는 자식 같은 건 나도 필요 없어.

앞으론 내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을 테니 나에게 지원 같은 건 기대도 하지 마."


그날 남편과 큰애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아이는 가끔 아빠의 훈계에 반항하기도 했지만 그때처럼 작정하고 아빠에게 대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은 큰 애도 묵은 감정의 찌꺼기를 다 토해 내지 않으면 살 수 없겠다는 듯 아빠에게 말대꾸를 했고, 결국 자식으로 인정받지 못한 처지까지 되고 말았습니다.


남편은 첫 애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똑 부러진 성격의 큰애가 나중엔 자신의 자랑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거죠.

그러나 아이는 아빠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고자 한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입니다. 누구에게 물어도 아이의 그런 선택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길은 자기가 선택해야 하는 게 맞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나 봅니다. 자식은 부모소유가 아닌데 부모의 뜻대로 않았다며 볼 때마다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태도에 지쳐갔던 게 당연했고요.


그날, 남편은 늦게 귀가하는 딸에게 화를 냈습니다.


남편은 늘 데리러 다녔습니다. 그 시간이 2시가 되었건 3시가 되었건 상관하지 않고 말입니다.

고등학교 3년을 등하교시키고도 모자라 대학생이 된 지금까지도 그 일을 했습니다.

아빠는 피곤했고, 아이는 자유롭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둘은 폭발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이 알아서 올 테니 아빠는 주무시라고 했고, 남편은 세상이 위험한데 어딜 겁 없이 혼자 다니냐며 빨리빨리 좀 다니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아빠가 숨이 막힌다고 했고, 남편은 버릇없이 부모한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딸에게 화가 났습니다.


둘은 지금까지 냉전입니다. 서로 말을 섞지 않아요. 한 자리에서 밥을 먹어도 시선은 피합니다.

둘을 보면 숨이 막힙니다. 특히 남편에게 화가 납니다. 둘 때문에 중간에서 전전긍긍 힘들어하는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 태도가 더 얄밉습니다. 내 머릿속에선 앞으로 어떻게 살지를 계산하고 또 계산하느라 심난해 죽겠는데 나의 이런 속도 모르고 옆구리나 쿡쿡 찌르며 장난을 치는 남편이 얄밉기 그지없습니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는 건 참 다행입니다. 만약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남편은 나에게 실망했을 겁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집을 나가서 사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란 생각을 하루에도 골백번은 더 했으니까요.


지금도 남편은 아이가 들어오면

"당신 딸 왔네."

전화가 울리면

"당신 딸이 전화했네" 하며 당신 딸을 입에 달고 삽니다. 아이는 이제 내 아이가 됐습니다. 나는 아이를 데리고 와서 남편과 결혼을 했나 봅니다.

머지않은 훗날, 이 글을 읽으며 웃는 날이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내 마음을 지옥으로 만들어 준 부녀 덕분에 나 혼자 외로이 등이 터져 너덜너덜 걸럭지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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