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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l 12. 2020

집을 태울 뻔한 후 생긴 나만의 루틴.

집을 불태울 뻔했다고?

집을 태울 뻔했다고?


진공 상태. 머리가 멍해지고 몸 구석구석에선 식은땀이 삐져나왔다. 남편은 말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소리는 사라졌고, 그 모습만이 슬로모션으로 뻥긋거린다. 남편이 뭐라 떠들던 상관없이 나의 머릿속에선 오직 '다행이다. 다행이다'만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아~ 제발, 정신 좀 차리고 살자"


남편의 훈계조 말투가 끝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에서야 나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유리 보호막처럼 나를 둘러싼 얇은 막이 차단되면서 중단되었던 공기도 공급되었다. 숨이 쉬어졌다.


"알았어요. 앞으로는 조심할게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대답했지만 그 대답은 머리에 까지 올라가지도 못한 채 바로 입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더 이상의 말이 필요치 않았다. 진심으로 잘못을 시인했다. 그것은 이유불문 나의 잘못이다.



퇴근 후였다.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상기된 얼굴의 남편이 들어왔다. 그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개입할 수 없다는 단호함이 묻어있었다. '나 지금 진짜 화났으니 어떤 변명도 하지 마' 하는.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날 난 우리 집을 불태워 먹을 뻔했던 것이다. 나무로 지은 한옥을 겁도 없이. 활활.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다.


내가 출근 전 다림질을 했다. 보통은 하루 전에 옷을 다려 놓기에 아침에 옷을 다리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날은 입고자 한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출근 전에 급하게 다린 것이다. 일정에 없는 일을 해서 였을까 너무 서두른 탓에 다리미 코드를 꼽아둔 채 출근을 하고 말았다. 다리미 코드는 반나절이나 방치되었고 나보다 먼저 퇴근한 남편이 그것을 발견했다.


만약 나의 출근이 조금이라도 더 빨라졌다거나, 다리미가 세워지지 않고 누워버리기라도 했다면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난 점심 후에 출근을 했고(꽂힌 시간이 그나마 줄었단 뜻이고), 다리미에는 물이 남아 있어(다리미가 고맙게도 스팀다리미였다) 그 물이 증발된 덕에 다리미의 온도가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열을 받을 대로 받은 다리미가 어떤 일을 저지렀을지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고, 내가 상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손치더라도 그날의 실수가 나를 식겁하게 만든 것만은 분명한 일이었다.


이상한 루틴

그날 이후 나에겐 이상한 버릇 하나가 생겼다. '하나, 둘, 셋, 넷' 냉장고 문을 눌렀다. 옆으로 가서 '하나, 둘, 셋, 넷' 김치 냉장고 문도 눌렀다. 숫자를 세며 냉장고와 김치 냉장고의 문을 확인한 후 창문과 인덕션도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며 확인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내가 한 행동이다.


나에게 새로 생긴 버릇은 어디를 갈 때면 늘 이렇게 확인을 한다는 것이다. 보통 때는 상관이 없는데 잠자리에 들 때나 집을 나갈 때 혹은 학원 문을 닫고 집에 올 때 등 내가 그 자리를 뜰 때면 늘 이렇게 확인을 해야만 안심이 된다. 처음에는 이런 강박이 치매의 초기 증상은 아닌가 걱정까지 했더랬다. 그러다 다리미의 충격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하면서부터는 그런 행동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실수를 줄이는 방법의 하나로 이해하게 되었으니까.


요즘은 루틴을 성공을 위한 기본 조건으로 삼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다.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모닝 루틴이나 꾸준한 운동이나 독서, 글쓰기 등. 그러나 나의 루틴은 일종의 트라우마다.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는 강박에서 생겨난 트라우마. 하지만 운동선수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 선택한 루틴이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 것처럼 나의 루틴 역시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주었다. 그 행위를 해야만 다음 행동이 가능하기에 이는 기도와도 같은 염원이며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나의 루틴이 성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일이라 해도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루틴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동은 아닌가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실수가 줄어들었고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챙기는 버릇이 생겼으니 해가 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다리미질을 한다. 그러나 쓰고 난 후 확인은 필수조건이 되었다. 눈으로 쓱 한번 훑어보는 것이 아닌 하나, 둘, 셋, 넷. 정확하게 네 번 확인해 주는 방법으로 말이다.


루틴이라는 것이 본인의 의지에 의해 성공적인 삶의 기반으로 만들어지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의지완 상관없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다. 비록 본인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나와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거나 피해를 주는 일만 아니라면 굳이 고치거나 없앨 필요도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만의 이상한 루틴을 실천하고 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마치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다고 마법을 거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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