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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Jul 31. 2020

정우성은 얼굴이 열일하고, 우리 집은 제습기가 열일.

장마철의 필수품.

좋아하는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록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 있다. 특별히 웃기려 한 말이 아닌데도 듣고 있으면 웃음이 나고, 자연스럽게 하는 말속에는 감동이 있다. 보는 순간 저절로 빠져들어 바보처럼 웃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웃음만을 콘셉트로 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웃음 유발자다. 웃음이 있나 싶으면 갑자기 치고 들어온 감동에 얼굴 표정이 바뀌게 된다.


그렇게 나를 웃게도 가슴 떨리게도 만드는 프로그램, 유재석과 조세호의 <유 퀴즈 온 더 블록>이다.


난 이 프로그램을 어지간히도 좋아하나 보다. 작년에도 블로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이번에도 이러고 있으니...


이번 주 '유 퀴즈'에서 다룬 내용은 <직업의 세계> 특집으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나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내용이었다. 출연 직업군은 영화배우, 웹툰 작가, 호텔 도어맨, 디지털 장의사, 재심을 담당했던 형사였다. 모두가 이야기꾼이었고 감동 전달자였다. 큰 자기 유재석과 아기 자기 조세호의 입담이 아니더라도 미소가 지어졌다. 그중 압권은 영화배우를 대표해서 나온 정우성이었다.


정우성이란 배우로 말할 것 같으면... '말해 무엇?'이다. 그는 배우로서 자신의 직업과 그 직업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생각하지 않는 개념 배우였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마저 얄밉지 않았다.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은 가진 자의 여유였다. 그 옆에서 또 다른 개성으로 한 몫한 아이 자기 조세호와의 캐미 또한 웃음 천국이었다. 보는 이의 시간이 아깝지 않은 유쾌한 시간이었다.


그중 기억에 남는 대목이 열일하고 있다는 정우성의 얼굴에 대한 부분이었다. 정우성은 얼굴이 열일하고 있다 했는데 우리 집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열일하고 있는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우리 집 여기저기를 돌며 열심히 물을 마시고 있는 제습기이다.


난 이 제습기란 놈이 참 놀랍다. 이 기계는 마치 자신의 몸 어느 부분에 물을 감추고 있는 느낌이다. 아니 물을 만드는 장치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 많은 물을 만들어내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필시 이 기계는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스스로 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 테다. 그런데 신기한 건 스스로 물을 만들어낸다면 방안 공기에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제습기가 물을 만들어낸 후에는 방안 공기가 뽀송뽀송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기계는 정말로 물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일까? 과학적 원리로 따지면 쉬울지 모르나 아무 생각 없이 기계를 쓰는 나로선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올해는 유난히 장마가 길었다. 지루하고 짜증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나마 열일해 준 제습기 덕분에 꼬들꼬들한 바닥을 뒹굴 수가 있었다. 이제 장마도 끝나가고, 임무를 마친 제습기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것이다. 조금 남은 습기는 에어컨의 몫이 될 터이고.


어느 자리에나 열일해 준 이들이 있어 삶이 편하다. 그래서 나의 삶도 남을 위해 열일하는 삶이길 바라게 된다. 웃음을 준 프로그램 덕에 열일하는 이들의 고마움도 생각해보고 나 자신도 돌아보게 됐다. 세상을 위해 열일 하는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날이다. 심지어 우리 집 제습기에게도.


제습기야, 장마 기간에 물먹느라 고생했다. 너의 열일로 우리의 삶이 뽀송해졌어. 내년 장마를 기약할 테니 잘 쉬고 있으렴. 신제품에 밀리지 않는 너의 능력도 찬양 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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