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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ug 09. 2020

나란 사람.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인내, 참을성, 버티는 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언어가 존재하기는 할까? 선택지가 없는 물음 앞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 나를 나타낼 수 있는 언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했고, 나를 똑바로 보기 위해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생각에 생각을 잇는 고민 끝에 물음의 답을 찾았고 그것이 '인내'라는 짧은 말로 귀결되는 것을 지켜봤다. 나의 삶은 버티고 견뎌낸 순간들이 만들어낸 진주가 시간이라는 거대한 끈에 의해 한 알 한 알 엮이며 이어지고 있었다.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이었다. 체력장이라는 시험이 있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진학하기 위해 치르는 시험으로 기초 체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다.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이 흔했던 시절이었으니 그 시절에는 필기시험 못지않게 체력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거 같다. 수능 시험을 위해서라면 체육 시간에도 문제를 풀어야 하는 요즘의 교육과 비교하면 사뭇 다른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시험에서 난 처음으로 참고 버티는 고통 속에 달콤한 열매가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철봉 오래 매달리기를 하면서 말이다.


"어이, 학생 그만 버티고 내려와. 오래 버틴다고 점수 더 주는 거 아니야."


얼굴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쏠린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화끈거렸고, 팔은 진정할 줄 모르고 덜덜거렸다. 옆자리의 아이들이 가을바람의 낙엽처럼 툭툭 떨어져 나갈 때, 나는 벽에 달라붙은 마지막 잎새가 되어 있었다. 시험감독관의 말에 철봉에서 손을 떼고 비릿한 철 냄새가 배인 손으로 떨리는 팔을 잡아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았다.


"가시내, 뭘 그렇게 오래 버티고 있어? 기본 시간만 버티면 다 만점인데"


친구가 어이없는 행동을 했다며 핀잔을 줬다. 그런데 웬일인지 친구의 말이 무색할 법도 한데 그 말에 내 얼굴은 웃고 있었고, 얼굴에서 내려온 열기 때문인지 가슴은 따뜻해지고 있었다. 그게 뭐라고 뭔가를 해냈다는 성취감에 세상이 달라 보였다.


시험 감독관의 말처럼 철봉에 오래 매달렸다 하여 점수가 높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거기에는 점수로는 보상받을 수 없는 축복 같은 선물이 있었다. 참고 버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 말이다.


인내의 선물

체력장 시험으로 참고 견디는 힘을 익혀서였을까? 나는 아이를 낳으면서 고통의 절정을 맛보았는데 그 고통의 꼭대기에서 최고의 기쁨도 맛보았다. 고통이 클수록 기쁨 또한 크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출산 예정일을 앞둔 어느 새벽, 평소와 다르게 규칙적으로 찾아드는 진통에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불안함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병원엘 가기 위해 나와 아이를 위해 준비해둔 물건들을 챙기기 시작했고, 남편은 안방으로 가 나의 사정을 시부모님께 알렸다. 심각한 표정으로 짐을 챙기는 나에게 시어머님께서 오셔서 참는 데까지 참아보고 아침은 먹고 병원엘 가자고 하셨다. 아이를 낳으려면 힘을 써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밥은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밥보다 병원에 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으나 아이를 낳아본 경험이 있으신 어머님의 말씀이니 나만의 재주를 발휘해 어디 한번 더 참아보자 결심했다. 다행히 어머니께서 차려주신 미역국을 다 먹고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태어나 처음으로 관장이란 걸 했다. 그 놀라운 효과에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실례하는 사람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간호사가 무통주사를 맞겠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께선 허리에 주사를 놓는 일은 위험한 일이니 주사를 맞지 않는 게 좋겠다고 하여 그러기로 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워 허리를 못 쓸 수 있다는 말만 귀에 들어왔다. 이후에 어떤 고통이 이어질지 몰라서였는지도 모른다.


하늘이 노래지는 걸 몇 번은 경험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들어왔다. 각오는 했다. 하지만 하늘이 노래진다는 말이 죽음의 문턱까지 갈 수 있다는 말일 줄은 몰랐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려 몸부림칠 때의 고통은 죽음의 문턱을 바라보게 하는 일이었다. 아이를 낳다 죽은 사람이 있다는데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분명 아이는 아래로 낳는 것인데 웬일인지 목을 타고 입으로 나올 것 같았다. 숨이 턱턱 막히고 심장도 멎을 것 같았다. 몸부림치거나 소리를 지를 힘도 없었다. 꽉 깨문 이 사이에서는 신음소리만 새어 나왔다. 남편의 팔을 잡고 숨 좀 쉬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나오는 말은 신음소리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이 죽을 것 같은 고통 사이에 단 몇 초의 숨쉬기가 나를 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의 호흡 뒤에 길고 긴 고통이 반복되었지만 사이사이 찾아든 짧은 휴식은 날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시간으로 끌어당겨 주었다. 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죽음의 문턱으로 밀어 넣었다 당기는 일로 알려준 것이다. 고통스러웠지만 견뎠다.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달달한 인내의 선물을 받았다.



나만이 참고 견디는 삶을 산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고 견디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삶 속에 보상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을까? 만약 모든 사람이 인내의 고통 뒤에 달콤한 열매가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간다면 어느 정도의 고통은 견딜 만한 일이 되지 않을까?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비밀을 알아버린 나는 지금도 견디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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