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빛구슬 May 10. 2020

어릴 적 꿈 .

글쓰기를 시작하다.

나도 한때 문학소녀였다.


문학소녀, 이 말이 이렇게 낯간지러운 말이 될 줄은 몰랐다. 그건 마치 '라떼는 말이야'를 읊어대는 꼰대들이 살았던 시절에나 통용될 법한 언어로 들리니 말이다. 그러나 그런 말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 있었고, 그것이 낭만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엔 누구나 문학소년이었고, 문학소녀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참 맑았다. 아니 '맑음'이라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좋게 말해 '참으로 순수했던 시절이었어'라고 표현할 수 있겠지만, 촌스러움에 웃음이 삐죽 나오는 걸 보면 유치함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순수함과 유치함이 혼재되었던 시절, 그 속에 내가 살았다.


그때 난 친구들과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얘기하길 좋아했다. 하이틴 로맨스의 자극적인 언어에 빠지지 않았기에 그런 책을 읽는 친구들보단 한 수 위란 허황된 생각도 했다.


접할 수 있은 매체가 한정된 탓에 벗이 되어 준 친구들 덕에 문학소녀가 될 수 있었다. 그 시절 나의 친구들은 참으로 위대했다. 그들은 불멸이었고, 해리포터 군단이 어벤저스급으로 온다 해도 이길 수 없는 강적이었다. 나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괴테와 니체, 지드와 위고. 그리고 생택쥐베리. 난 그들을 사랑했고 동경했다. 그들을 친구로 삼았던 나의 글은 풍성하고 진실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위대한 작가와 작품을 논하며 꼿꼿했던 나의 허세와 거만은, 꽃길만 걸을 것 같았던 환상은 앞을 볼 수 없는 뿌연 흙탕물 속으로 고꾸라졌다.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부재는 많은 걸 잃게 했다. 세상은 외적인 결핍으로만 힘든 게 아니라 내적 결핍으로도 힘들 수 있다는 걸 절감하며 살았다. 나의 세상은 밝지 않았고, 웃음으로 시작했던 하루하루는 무표정으로 시작되어 눈물로 마감되었다. 밤마다 눈물을 먹고 잠든 일기장은 퉁퉁 불어 뚱보가 되기 일쑤였다. 내적 결핍이 많은 사람은 쓸거리가 많아진다더니 나의 일기장이 그랬다. 내 일기장에는 늘 쓸거리가 줄을 서고 있었다.


눈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눈물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희뿌연 연기 속에서 차마 닦을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옳은 일을 한답시고 짱돌을 주웠다. 엄마는 친척들에게 자식을 데모쟁이로 키우고 있다는 훈계를 들었다. 그러면서 나를 무서워했다.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딸의 미래를 두려워했다. 그런 엄마에게 난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얘기하며 강하지 못함을 비난했다. 나의 말은 정의도 뭣도 아닌 불효였다. 평범하지 않은 현실에 대한 반항이었다. 아빠가 없다고 모두가 절망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 일로 난 절망하고 좌절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면서 나의 문학소녀의 꿈은 사라졌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업을 위해 펼친 문제집에서 중학시절 문예반 선생님이셨던 분의 시를 읽게 되면서 나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의 시는 나를 때렸고, 정신이 번쩍 들게 만들었다.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꿈을 되살렸다.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국문학과를 선택했던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내 꿈이 자유로워지길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걸 모르고 살아왔다. 이제는 쓰고 싶다.


꿈이 나를 이끌었나 보다. 어린 시절의 꿈이,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나를 이끌었나 보다. 지금은 일기를 쓰듯 일상을 쓴다. 하지만 내 몸속에는 세상이 두려워 숨어 버린 수많은 언어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나는 그것들을 꺼내주고 싶다. 내 꿈에 책임을 지고 싶다.


다행이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있어 다행이다. 삶에 아직 이루지 못한 목표 하나가 생겨 다행이다. 이제 나의 삶은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이다. 나이를 잊은 도전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을 태울 뻔한 후 생긴 나만의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