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쓰러진 날,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정해졌다.

아버님께서 쓰러지신 날 알게 된 일.

by 은빛구슬
아버님이 쓰러진 날


어머니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막내야, 일어나 봐라"


감정을 꾹꾹 눌러 들릴 듯 말 듯 전해진 그 소리엔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묻어있었다. 남편과 나는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그 작은 소리가 그렇게 크게 울려 우리의 귀에 꽂혔는지는 지금 생각해봐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 세상은 어둡고 고요했다.


어머니는 떨고 있었다. 말없이 손으로 입을 막은 채 마당을 바라보며 흐느끼는 모습은 우리의 심장을 내려앉게 만들었다. 어머님의 눈길이 머무는 곳에 나의 시선이 닿았을 때 나는 그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버님!"

"조용히 해라. 동네 사람들 깬다"


나의 본능적인 반응에 어머니는 냉정하게 이웃을 의식하고 계셨다. 그런데 상황이.. 이미 남을 의식하며 행동할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남편과 나는 신발 신는 것조차 잊은 채 마당으로 뛰어내려 갔다. 아버님은 마당 한가운데에 큰 바위가 되어 엎드려 있었다. 바위였다. 도저히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바위. 남편과 내가 아버님을 일으켜 세우려 했지만 아버님의 몸은 꼼짝을 하지 않았다. 뻣뻣하게 굳어버린 몸을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아버님의 작은 체구가 그렇게까지 무거워질 수 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편은 아버님 옆으로 가 자신의 등에 아버님 팔을 올리게 한 후 끌다시피 아버님을 움직여 방으로 옮겼다. 어머님이 아버님의 굳은 몸을 마사지하고, 남편이 병원엘 가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사이 나는 119에 전화를 했다.


119 상담원은 침착하게 주소를 묻고는 환자의 의식 여부를 물었다. 놀란 마음에 아버님을 방으로 옮길 생각만 했지 그때까지 우리 중 누구도 아버님의 의식을 확인하지 않고 있었다. 당연히 숨을 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아버님을 흔들어 깨우며 의식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버님께서 희미하게나마 신음소리를 내셨기에 상담원의 지시대로 아버님께 말을 시키며 통화를 계속할 수 있었다. 통화가 이어지는 동안 아버님은 점점 깨어나셨고 119 대원이 도착했을 무렵에는 말씀까지 하실 수 있게 되었다. 굳었던 몸도 말랑말랑해지고 있었다.


119 대원이 아버님의 상태를 물으셨을 때 아버님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할 정도로 상태가 좋아지셨다. 의식을 찾았어도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119 대원의 말에 아버님은 괜찮다며 아침이 되면 병원에 가겠다는 말로 그들을 돌려보냈다. 나는 그들이 돌아가는 게 두려웠다. 그 사이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며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님을 설득하지 못했고 몇 시간이 지난 아침에야 병원엘 갔다. 하지만 그때 우리는 아버님을 설득해야 했고, 아버님은 119 대원과 함께 병원엘 가야 했다.


아침이 되어 병원에 가신 아버님은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뇌경색으로 입원하신 후 한 달을 견디지 못하시고 결국 폐렴으로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그날, 그렇게 늦은 시간, 아버님은 무엇을 하다 그곳에서 쓰러지셨을까? 어머니는 마당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시다 쓰러지신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아버님은 방 앞에 있는 멀쩡한 화장실을 두고 왜 그 늦은 시간 손님용 화장실로 가셨냔 말이다.


어쩌면... 그날, 그곳에 가서, 그렇게 쓰러지지만 않으셨어도 아버님은 지금쯤 우리 곁에 살아계셨을 것이다.


어머님이 쓰러진 날


그렇게 아버님이 가신 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이 쓰러져 누운 가족을 보는 일이었다. 그런 모습을 다시 본다면 나의 심장은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며칠 전, 내 심장이 놀랄 일이 또 생겨버렸다.


점심을 먹고 설거지를 하던 나는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마루로 뛰쳐나간 나는 평상에 앉아 다리를 주무르고 계시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남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어머니께서 발을 헛디뎌 쓰러지셨다는 것이다. 마침 남편이 옆에 있어 어머니를 바로 일으켰기 망정이지 다리가 휘어진 채 앉아 계셨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나도 놀랐다. 하필 그 자리는 그 옛날 아버님이 누워 계셨던 자리였기 때문이다. 놀란 어머니를 부축해서 침대에 눕히고는 우황청심환을 드시게 했다. 자신도 모르게 다리의 힘이 풀렸다고 말씀을 하시는 어머니는 이미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다행히 한숨 주무시고 일어나신 어머니에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난 어머니를 600만 불 사나이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다. 어머니께서는 10여 년 전에 두 다리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하셨다. 결혼 당시만 해도 잘 걷지 못하시던 어머니께서 수술을 하고 반듯하고 씩씩하게 걷는 모습을 보고 난 그 다리가 영원할 줄 알았다. 천하무적의 다리가 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무쇠 다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낡아 가고 있었다. 몸의 모든 부분이 힘을 잃고 있을 때 몸의 일부가 된 그 무쇠도 힘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라고 했던가? 어머니께서 쓰러지신 일로 아버님때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나이드신 분들 곁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전화만 하면 출동하는 119도 필요하지만 마음의 안정을 주는 가족은 더욱더 필요하다.


한때 분가를 꿈꿨지만 시부모님 곁을 선뜻 떠나지 못한 이유가 이거였다. 힘을 잃어가는 부모님에게 우리는 힘이 되는 배터리였다. 마음의 안식처였다. 중복에 삼계탕 잘 드시고 다리가 풀려버린 어머니로 인해 난 또 그렇게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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