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아버지의 부재가 불러온 변화, 편하지 않다.

남편의 취미는 바뀌었다.

by 은빛구슬

남편의 취미는 캠핑이었다.

여기서 '이었다'는 명확하게 과거를 의미하는 언어다. 그래서 지금은 그 취미를 갖고 있지 않다는 말로도 통한다. 과거는 현재의 시점에서 지나버린 시간이고 안타깝게도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기에, 과거로만 표현해야 하는 남편의 취미 생활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있다.


남편의 취미 생활은 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난 결혼한 선배들로부터 남편의 취미 생활은 절대 혼자 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수차례 들었다. 그렇게 되면 주말이란 시간은 나에게 주어지지 않는 시간이 된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특히 골프나 낚시처럼 중독성이 강한 취미는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취미 1순위였다. 후에 어떤 이는 여기에 등산까지 포함시켜야 주었다.

그러면서 그들이 권한 남편의 취미 생활은 무조건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취미여야 했고, 그로 인해 선택하게 된 남편의 취미 생활이 바로 캠핑이었다.


캠핑은 아이들이 유치원을 가면서 시작되었다.

사실 내가 내 입으로 이 취미 생활을 얘기했지만 난 캠핑을 좋아하지 않았다. 집을 떠나는 여행이라면 무조건 좋은 호텔에서 아침의 여유를 즐기며 우아하게 조식을 먹는 그런 것이어야 했다. 그런데 캠핑은 시작에서부터 끝나는 시간까지 노동의 연속이었다. 텐트를 치는 일도 일이지만, 마지막에는 다시 그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생각은 쉬는 내내 내 머릿속을 지배했고, 숙제처럼 남아 부담감을 팍팍 주었다. 그래서 처음의 캠핑은 아이들의 지적처럼 밖에 나와서 하는 거지 생활, 생고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그렇게 시작된 캠핑도 반복되다 보니 늘 입는 옷처럼 편안해졌다는 것이다. 텐트는 눈짓만으로도 착착 만들어졌고, 하나씩 구입한 장비로 안락한 생활과 다양한 음식도 맛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에 시작한 캠핑은, 여름은 피하게 되는 노련함도 생겼다. 땀을 뻘뻘 흘리며 텐트를 쳐야 하는 여름날의 캠핑은 서로를 화나게 하는 일만 만든다. 그러니 여름날의 캠핑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좋다. 그래도 여름 캠핑을 꼭 즐기고 싶다면 바다는 피하고 산으로 가길 권한다.

캠핑 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단연코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과 눈 내리는 겨울이다. 텐트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단풍을 구경한다든지, 눈을 맞으며 군고구마를 구워 먹는 일은 세상의 모든 시름을 모든 잊게 하는 무릉도원의 삶과 같다. 추위 따위는 걱정할 필요도 없다. 요즘은 어느 곳에든 전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전기장판이 놓인 뜨끈한 방 안에서 캠핑을 즐길 수 있고, 샤워실에서 따뜻한 물로 샤워도 가능하다. 이렇듯 10년 동안 계속 유지된 캠핑은 더 이상 생고생이 아닌 영혼을 자유롭게 만드는 힐링의 시간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그런 캠핑도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는 부담 없이 즐겼던 캠핑이 어머님이 혼자 계신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 것이란 뜻이다. 남편은 텐트를 치는 일이며, 음식을 만드는 일에서 기쁨을 느꼈다. 그것이 사람 사는 낙을 느끼게 해 준다면서. 그랬던 남편이 어머님이 혼자 계신 이 시점에선 그 모든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직감하곤 과감하게 그 모든 걸 접어 버렸다. 아쉬움은 넘쳐났지만 불가능한 일에 한없이 연연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 말이다. 만약 그 일을 남편이 다시 하는 날이 온다면 그날은 우리가 이 집을 떠나는 날이 될 것이니 이 또한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는 자연스럽게 했던 일들을 아버님의 부재로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아버님의 존재를 실감하게 되었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에는 어머님이 방에 혼자 계시는 것도, 혼자 식사하시는 것도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님이 안 계시는 지금은 어머님이 혼자 계시는 시간이 자꾸 신경이 쓰인다. 나와 남편이 우리 방에서 웃을 때도 신경 쓰이고, 함께 텔레비전을 볼 때도 신경 쓰인다. 심지어 남편이 우리 방에 있지 않고 어머니 방에 있으면 오히려 마음이 편해짐도 느낀다.


난 시아버지의 시집살이를 했다고 글을 쓴 사람이다. 시아버지의 부재는 시집살이를 가져간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시집살이가 남아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존재하는 실체와 같은 불편함. 차라리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가 더 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질 지경이다.


이렇게 아버님의 부재는 남편의 취미 생활을 바꾸게 함과 동시에 나의 마음에 불편한 돌덩이 하나를 여과 없이 던져 준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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