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자식들 모두가 모였을 때 어머니께서 멍한 표정으로 마당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나이들어 가셨으니 호상이고, 좋은 날 가셨으니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라는 위로의 말은 우리가 아닌 본인 스스로의 슬픔을 다독이려 하신 말씀이었다.
더울까, 추울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좋은 계절,
그러나 그 계절은 이제 어머니껜 가장 슬픈 계절이 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5월만 되면 어머니께선 아프셨다. 그런데 올해는 바깥 외출까지 줄어들면서 그 외로움이 더 깊게 찾아든 거 같다. 요 며칠은 아침마다 투명한 얼굴에 부은 눈까지 하고 나타나신다. 어머니의 저런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또다시 찾아든 5월을 느끼게 한다. 혹시 어디 아프신 건 아닌지 여쭈어봐도 괜찮다는 말씀만 하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건 어머니의 느려진 몸짓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3년, 어머니께선 입버릇처럼 살아생전 아버님께선 늘 자기보다 3년만 더 살다 오라는 얘길 하셨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남편은
"3년은 무슨 3년?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든 말든 어머니께서는 오래오래 사시다 천천히 가셔"라고 맞받아쳤다. 그런데 어머니의 3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께선 생각하셨을 거다. 3년은 기약할 수 없는 먼 후일의 시간이고 그전에 삶은 많이 정리될 것이라고. 그러나 어머니의 생각만큼 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아무 준비도 없는 자신에게 찾아온 3년은 어머니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미묘한 감정의 꼬임이 어머니의 꿈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었을까? 어머니께선 꿈을 꾸셨고, 그 이야긴 우리에게 전해졌다.
어머니 꿈에 나타나신 아버님은 자신의 자리가 불편하다고 불평을 하셨다 한다. 어머니께선 아버님의 묘에 무슨 일이 생긴 거 같다며 우리에게 다녀와 보라고 하셨다. 다른 때 같으면 며칠 후면 아버님의 제사이니 그때 찾아가 뵙겠다고 미뤘겠지만, 지금 우리의 말 한마디가 어머니를 얼마나 서운하게 만들지 알고 있었기에 그리 할 수는 없었다.
남편과 나는 서둘러 아버님의 묘로 향했다.
3년 전 처음 이 길을 찾았을 때 길가 주변엔 하얀 이팝나무가 무성했다. 끝없이 이어진 하얀 길은 아버님을 천국으로 안내하는 이정표 같았다. 그 기나긴 길을 통과하여 아버님의 누울 자리를 보았을 때 우리 모두는 흐뭇한 미소로 각자의 자리를 가리켰다.
세로로 길쭉한 직사각형의 아버님의 묘, 그 자리엔 우리 가족 모두가 누울 자리가 있다. 아버님 옆에는 어머님이, 그 아래엔 두 아주버님과 형님들의 자리가, 그리고 마지막엔 우리의 자리가 있었다. 우리 가족 모두는 언젠간 함께 할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그 자리가 꽉 차게 되면 그 누구도 외롭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금은 아버님만이 홀로 계시니 그 슬픔이 클 뿐이다. 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묘지에 그렇게 아버님의 묘는 만들어졌다.
그런 아버님의 묘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다. 아버님의 묘는 관리를 받고 있다. 만약 묘에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 관리소에서 미리 손봤을 것이다. 그리니 묘의 문제 따위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상대로 아버님의 묘는 이상이 없었다. 우리는 아버님이 좋아하셨던 커피를 대접하고, 돌아오는 길에 조경 농원에 들러 어머니께서 사오라고 한 두릅나무를 샀다. 난 자잘한 열매가 귀여웠던 앵두나무 한 그루까지 챙겨 들었다.
우리가 집에 도착했을 때 어머니께선 벤치에 앉아 마당의 꽃이며 나무들을 구경하고 계셨다. 아버님의 묘에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말에 어머니께선,
"니 아버지께서 내가 찾아와 보지 않는다고 나한테 어리광을 부렸나 보다. 다녀와줘서 고맙다. 아무 이상이 없다니 다행이고..."라며 쓸쓸히 웃으셨다.
설마 아버님께서 어머니께 어리광이나 부리려고 꿈에 나타나셨을까? 어쩌면 그건 아버님을 보고 싶어하는 어머니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무의식의 발현일지 모른다. 어머니는 자신의 그리움에 아버님 핑계를 대고 계셨다. 자신의 그리움을 우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아서말이다.
내가 어머니 옆에 앉자 어머니께선 정원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셨다. 지금까지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는 얘기다. 세월이 가로로 흘러도 어머니의 얘기는 늘 반환점을 돌아 과거로 가고 있었다. 나무 하나하나에 숨은 아버님의 모습을 어머니께선 꺼내보고 또 꺼내보셨다.
우리에게 남을 그리움
남편과 사 온 나무를 심으며 생각했다.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 이 벤치에 앉아 있을 때면 나도 어머니처럼 나의 아들과 딸 혹은 며느리에게 두릅나무가 심어진 사연을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우리가 없는 세상에서도 그 나무를 통해 나와 남편을 떠올리겠지.
세상에 무엇인가 흔적을 남기는 일은 의미 있는 일인 거 같다. 그 흔적을 통해 남아있는 사람들은 그들을 추억하고 그리워할 수 있으니 말이다.
어머니께서 아버님이 가꾸신 정원을 바라보며 아버님을 추억하신 것처럼, 우리는 벤치에 앉아 아버님을 추억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추억할 것이다. 그것은 뫼비우스의 띠를 타고 돌듯 우리에게서 우리 아이들에게 또 그 자손들에게 이어질 것이다.
아버님이 어머니의 꿈에 나타나신 건 어리광을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어머니의 그리움에 대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