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을 바치고 왔다.
"집에 있지? 지금 가려고 하는데 뭐 필요한 거 없어?"
남편이 물으니,
"필요한 것은 무슨, 그냥 와"
시누이가 대답했다.
목공을 시작한 이후 남편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해도 부끄럽지 않은 솜씨가 된 것이다. 시누이에게 도마를 선물하려는데 코로나 때문에 외출을 줄이면서 차일피일 집에 오는 걸 미룬다. 선물을 하는 사람의 마음이 받는 사람의 마음보다 급하다. 남편은 한시라도 빨리 자신이 만든 작품을 보여주고 싶은데 시누이는 남편의 그런 마음도 모른 채 세상 느긋하기만 하다.
남편에게 있어 주인을 찾아가지 못한 도마는 끝내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는 것만큼이나 떨떠름한 일이다. 마음에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기분이랄까? 짐을 덜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남편이 직접 나서서 도마를 배달하는 방법을 택했다. 가기 전에 필요한 물건이라도 있으면 사다 주려는 심상으로 전화를 하니 그냥 오라고 한다. 선물을 하는 사람이 받는 사람보다 더 공손해지는 우스운 상황이다.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차를 타고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를 오가는 것은 시누이에겐 쉬운 일이 아닌가 보다. 아니면 남편의 선물이 그리 다급하게 받을 정도로 필요한 것이 아니란 말일 수도 있고. 어찌 되었건 목마른 놈이 우물 판다고 선물을 하고 싶은 우리가 먼저 길을 나섰다.
시누이 집은 깨끗했다. 한결같다. 4층까지 오르는 동안 계단에서 먼지 한 톨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역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아.'
내가 시누이를 처음 만난 날도 시누이는 청소를 하고 있었다. 거실 가운데로 소파를 당겨놓고 청소기를 돌리던 시누이는 새로 아이들을 맡게 된 선생님이라고 소개된 나를 밝은 목소리로 맞아주었다. 낯섦과 어색함으로 한창 움츠려 있었던 그날, 시누이의 목소리는 나를 녹이는 봄날의 햇볕이었다. 학부모를 직접 만나 상담까지 해야 하는 가정 방문 교사의 일은 나에게는 맞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난 늘 얼어 있었고 누군가가 나를 녹여 주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시누이가 그 일을 해 주었다. 하이톤의 밝은 목소리로.
"아~, 안녕하세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날 시누이의 목소리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다. 그저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보통의 목소리였을 뿐. 하지만 난 그날의 목소리를 나를 향한 호의로 받아들였고, 이후 시누이 집은 나에겐 가장 편한 학생의 집이 되었다.
남편이 도마를 꺼내놓았을 때 시누이는 환호했다. 남편 역시 이런 액션을 기대했기에 하루라도 빨리 도마를 선물하고 싶었던 것이다.
"막내야, 너 퇴직하면 이 일 꼭 해라. 이렇게 솜씨가 좋은데 딴 일을 하면 그건 네 인생의 손해다"
"그럼, 퇴직하고 무슨 일을 하겠어. 이왕 시작한 거 이 일이나 계속해야지"
별거 아니라는 듯 내뱉었지만 남편의 말에는 목공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뿌듯함에서 말이다. 남편은 학교 다닐 때에도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삼아야지 하는 정도의 열정은 아녔기에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공무원이란 직업을 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야 자신의 적성을 찾아내곤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먼지와 소음 속에서도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우리의 도마 선물을 받고 시누이는 냉장고에서 봉지 두 개를 꺼내왔다. 자잘한 밥새우가 담긴 주황색의 봉지였다.
"전에 너희 집 갔을 때 새우 넣고 볶아낸 애호박나물 진짜 맛있더라. 밥새우가 그렇게 맛있나 싶어 한 박스 샀는데 양이 너무 많아 나눴어. 가져가서 먹어"
솔직히 말해 그 애호박나물에 밥새우를 넣으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나물을 요리할 때 쓰던 새우가 떨어져 밥새우로 대체한 것뿐인데 시누이는 그게 그리도 맛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그걸 박스로 사버리다니 역시 통 큰 사람은 손까지 크구나 싶다.
이렇듯 시누이는 자신의 집을 방문할 때면 절대 빈손으로 보내는 일이 없다. 작은 것일지라도 무엇인가를 꼭 들려 보낸다. 시누이는 그걸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왜 좋았지?
늘 밝은 모습으로 예의를 지키며 나를 대해주었던 시누이. 그녀의 첫인상은 좋았다. 그녀로 인해 얼었던 나의 사회생활이 녹았으니.
그런데 그녀는 나의 무엇을 보고 자신의 남동생을 소개했던 걸까? 툭하면 아들, 딸을 가르치러 온 선생이 생리통으로 30분 이상을 누워있기 일쑤였고, 그런 엉뚱한 행동을 하고도 싹싹하게 대화 한번 나누지 않았는데.
남편과 아들의 말이 다른 건 몰라도 나의 착함 하나는 인정한다고 했는데 시누이 역시 헐렁함 속에 숨은 나의 착함을 본 것은 아닐까? 난 시누이가 그랬다고 믿고 있다. 그래야 시집살이로 서운한 맘이 들어도 용서가 될 테니.
가끔 남편이 미울 때 시누이까지 미워한 적이 있다. 연쇄 반응처럼.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지금의 나는 시누이에게 감사하고 있다. 나의 착함을 알아봐 주었으니.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도대체 시누이는 나에게서 무엇을 본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