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 떡으로 입을 얻어맞은 시누이

입막음 떡이라고요.

by 은빛구슬
아버님의 제사는 날아가지 않았다.


두 번의 집안 행사가 취소되면서 아버님의 제사가 제대로 치러질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나의 기우였다. 아버님은 돌아가신 후에도 자신의 운을 잡고 계셨고 그 운으로 자식들을 불러 모아 정성스러운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자신의 제사상을 무사히 받고 소리 없이 가셨다.


코로나로 어머니의 생신과 시할아버지의 제사가 취소되었을 때만 해도 나는 외로웠다. 집안 행사는 북적거리는 속에 며느리들의 수다가 있어야 제맛인데 모든 것이 제거된 음소거 속에 나 혼자 외로이 생신상과 제사상을 준비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번 아버님의 제사는 가족 모두가 모여 시끌벅적한 가운데 치를 수 있어 비로소 집안 행사다운 행사를 맛볼 수 있었다.


음식 준비도 수월했다. 손이 여럿이니 모든 과정이 착착 이루어지다 못해 착착착 순식간에 끝났다. 준비를 끝낸 나와 형님들은 허리를 펴고 식탁에 앉아 본격적으로 수다를 시작했다.


우리의 수다는 늘 시누이를 향했다. 시누이는 우리 세 며느리에겐 부러움의 대상이다. 몸이 약해 결혼 후에는 아이들만을 키우는 전업 주부의 삶을 살았고, 자식을 다 키운 지금은 그에 대한 보상을 철저히 고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자식들 교육에서 벗어나지 못해 허우적거리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가 된다. 조금만 참으면 우리에게도 찾아올 미래의 모습이라고 말하겠지만 그건 또 아니다. 적어도 우리 자식들은 엄마의 건강 검진을 위해 휴가까지 내가며 비행기를 타고 오진 않을 테고 집에 혼자 있는 엄마를 위해 타지에서 음식을 주문해 주는 일 따윈 하지 않을 것이니 말이다.


저런 일까지 해주는 자식을 둔 시누는 진심으로 자식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이다.


"아무튼 고모는 시집 하나는 잘 갔어요."

큰형님의 저 말속에는 우리 세 며느리의 부러움이 녹아 있었다.


그 입 다물라

그런 큰형님의 말에 시누는 말했다.


"아이고, 그런 말 마셔. 언니들이야 말로 시집 잘 온 줄 알아요. 언니들은 친정 엄마한테 떡으로 입 맞아 봤어요? 난 언니들한테 시누 노릇 하지 말라고 엄마한테 입까지 얻어맞은 사람이라구요"


처음 듣는 말이었다.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라는 말은 들었어도 그런 시누이의 입막음을 위해 떡으로 입을 때리는 행위를 했다는 말은 보지도, 듣지도, 심지어 상상조차도 하지 못한 일이다. 그런데 나의 시어머니께선 시누이에게 그런 행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 며느리들은 시누이에게 서운하다 싶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게 진정 '그 입 다물라'란 시어머니 말의 효과였던 걸까?


"그런데 언니, 그때 언니가 해 온 이바지떡 있죠? 그 떡 진짜 맛있었는데... 엄마한테 얻어맞고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내가 그 떡을 다 먹었잖아요. 지금 떡들은 왜 그 맛이 안 나는지 몰라."


"에이, 형님 그 말 장난이죠?"

믿을 수 없다는 듯 내가 물으니,


"내가 당신한테 왜 장난을 쳐? 이 쫄따구가 사람 말을 안 믿네."


우리의 대화는 시누와 함께라면 늘 즐겁다. 보통의 사람보다 옥타브 높은 시누의 말투는 우리의 분위기까지 한 옥타브 올린다. 나이는 제일 많아도 두 오빠의 부인인 형님들에게 언니라고 불러서인지 여지없이 동생의 모습을 하고 있다.


말리는 시누이


가끔 말로 나를 때리는 시어머니 때문에 상처 받은 적은 있다. 그러나 말리는 시누 때문에 상처 받은 적은 없다. 시누는 언제나 나에겐 위로였다.


"네가 그냥 이해해. 나이 들더니 엄마가 속이 없어지셨네"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엔 동생댁에게 반말을 한다고 늘 야단을 맞았던 시누였다. 그러나 난 내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는 시누를 좋아한다.


어머님의 입막음 떡 덕분이 아니더라도 시누는 언제나 내 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집안에 나를 불러들인 책임감 때문에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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