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선물을 받았다. 선물을 받았는데 마냥 기쁘지가 않다. 남편의 얼굴을 따라 흐르는 땀 때문이다. 굳이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데 남편은 나의 말 한마디에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사서 하고 말았다.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나 자신을 자책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선물은 남편의 진한 노동을 먹고 나의 손에 무겁게 전달되고 있었다.
며칠 전, 남편이 도마 만드는 일을 쉬고 있을 때였다. 다음에는 무엇을 만들까?로 고민하는 남편에게 난 화장대 위에 놓을 화장대 케이스를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다. 당장 만들어 달라는 건 아니었고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그런데 남편은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일에 착수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쓸데없이 내가 남편에게 일을 만들어준 꼴이 되었다. 여름에는 공방이 더우니 일을 하지 말라고 말했던 사람이 난데 그런 사람이 다시 남편을 공방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남편의 공방에 간 나는 내 말의 무게에 짓눌리고 말았다. 취미도 취미 나름이지 이게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선풍기 바람으로는 감당이 안 돼 연신 땀을 흘려대는 남편을 보고 있자니 미안함을 넘어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쯤 되면 말리는 게 상책이다. 남편 옆에 서서 급한 것이 아니니 날이 서늘해지는 가을에 하라며 신신당부를 해도 힘들지 않다며 나의 말을 무시한다. 밤마다 12시가 넘어 땀에 젖어 들어오는 남편을 보는 것이 불편했다. 자꾸 시어머니 눈치를 보게 되었다.
시어머니께서,
" 날도 더운데 아들은 뭘 그렇게 만든다냐?" 고 물어도 선뜻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대답하나 잘못했다간 난 직장 생활하느라 고생한 아들을 퇴근 후에 까지 부려먹은 상또라이 며느리가 된다. 비록 말로는 표현하지 않을지라도 속이 부글부글 끓을 일이다. 지금 어머니께서 보고 있는 사람은 나의 남편이 아니라 당신의 아들이다. 그런 어머니께 "당신 아들이 내 선물을 만들기 위해 이 더운 여름날 에어컨도 없는 공방에서 땀을 줄줄 흘리며 고생을 하고 있어요"란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묻는 말에 궁색하게,
"그냥 뭐 만들 것이 있나 봐요" 할 뿐이었다.
그런데 선물이 완성되면서 여름날 남편을 고생시킨 일의 정체가 밝혀졌다. 자랑스럽게 선물이라며 내민 남편의 작품 앞에서 난 마음을 다해 기쁨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어정쩡하게 웃으며 고생했다는 말만 해야 했다. 이번엔 제대로 어머니의 눈치가 보였다.
"좋긴 하다만 날이나 풀리면 하지"
"그러게요. 더운데 넘 고생을 했어요"
난 옆에서 뿌듯해하며 웃고 있는 남편에게 어서 씻으라는 말을 던지고는 서둘러 선물을 안고 내 방으로 달렸다.
방으로 와 화장대 위의 화장품들을 케이스에 넣고는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하며 좋아라 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화장대를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생이 맘 아픈 것처럼 나도 남편의 고생이 맘 아프다. 차라리 어머니 선물을 위해 남편이 수고를 했더라면 내 마음이 덜 아팠을지 모른다. 남편의 고마운 선물을 받고도 맘껏 표현할 수 없었던 데는 남편이 나만의 남편이 아니라 아직은 어머님의 아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어쩌면 어머니께서 남편의 고생을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뻔했다. 이것 역시 함께 사는 시집살이의 불편함이다. 서로 보지 않으면 좋을 것을 보게 하는 시집살이. 그것을 다시금 느끼다니 나의 시집살이는 아직 끝이 아닌 진행형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