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살이 배틀에서 백기를 들다.

by 은빛구슬
시집살이 배틀에 서다.

'흥! 겨우 그 정도의 실력으로 나와 시집살이를 논하겠다고? 어림없는 소리. 그대들은 아직 멀었어'


처음 시집살이에 대한 글을 쓰려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시집살이 배틀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20년 시집살이 내공을 누가 감히,라는 거만함으로 자신감은 넘쳤으니 말이다. 그런데 글을 쓰는 동안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악다구니는 빵빵한 풍선에서 바람 빠지듯 순식간에 빠져나가 그라운드 한쪽 구석에 초라하게 눕고 말았다.


팽팽하게 부풀어 곧 터질 것 같았던 설움이 왜 이리도 허무하게 쪼그라들었나 생각해보니, 배틀 그라운드 위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처절한 시집살이를 겪은 신흥 강자들이 넘쳤으며 그에 비해 주인을 닮아 나약하기 짝이 없었던 나의 시집살이는 그들의 강력한 포스에 눌려 고개를 숙여야 했던 것이다.


결혼 초 나를 누르며 사네 못 사네를 부르짖었던 허약한 마음은 어느새 평정심을 찾고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 그 시절을 관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시절에 썼던 글이라면 몰라도 감정이 희석되어버린 지금으로선 경쟁이 안 돼"라며 패배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난 "이대로 질 순 없어요. 그때 내가 흘린 눈물이 얼만데.. 뭐가 그리 서러웠는지는 말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라며 꾸역꾸역 글을 쓰려 했다.


내가 시집살이로 힘들었다 말하는 그 시절, 시댁 식구들(시아주버님과 시누이)은 우리 집에 와서 밥을 먹고 가는 일이 많았다. 한 주는 큰 아주버님네 식구들이 왔다면, 다른 주는 작은 아주버님네 식구들이 왔다. 그렇게 번갈아 가며 우리 집(시댁)을 방문하는 통에 나는 주말이면 있는 솜씨, 없는 솜씨를 발휘해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당시에는 그것이 그들과 가족이 되는 하나의 통과 의례쯤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말없이 그 일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반복적인 그 일에 내 자신이 지쳐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내 몸이 귀찮아지니 내가 하는 모든 일이 귀찮아졌다. 입덧으로 인한 임신 우울증도 한 몫을 했다. 가족이라는 소속감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보게 된 시부모님의 행동은 정체성의 혼란을 가져왔다.


시부모님은 시댁을 찾는 아주버님과 형님들에 대해선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먼 데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마당으로 달려가 그들을 반겼고, 조카들을 안아주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그와 같은 대접을 받는 자식들은 부모를 찾는 수고로움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데도 그런 황송한 대접은커녕 없는 솜씨로 식구들의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는 나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피폐해져 갔다. 똑같은 자식이고 며느리인데 누구는 대접을 받고 누구는 대접을 해야 하나? 라는 불만이 턱 밑까지 차올라 말 한마디만 서운하게 해도 울분을 토할 것 같았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목구멍에서 다물어진 입 안까지. 그게 나의 한계였다. 분노할 수는 있었으나 표출할 줄은 몰랐다. 자기주장 강하고 당당한 며느리들은 그런 나를 보고 바보 같다, 자존감도 없다 비난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런 사람이 나인 걸. 폭발할 듯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타협점을 찾고마는 게 나란 인간인데.


가끔 시시때때로 전화하는 시어머니나 전화를 강요하는 시어머니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난 그들에게 '전화로 스트레스받기 싫으면 시부모님과 살면서 아침마다 전화 대신 얼굴을 맞대고 문안 인사를 드려보세요'라고 말하고 싶었다. 주말마다 시댁을 방문해야 한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에게는 '왔다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면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삼시세끼 시부모님의 밥을 1년만 차려보세요'라고 휘갈기고도 싶었다. 그러나 그런 빈정거림 끝에 듣게 된 말은 결국 "누가 너더러 그런 선택을 하라고 했어? 이 모든 게 네가 자초한 일이잖아"라는 냉소적인 부메랑의 역습뿐이라는 걸 알았기에 그마저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었다.


그때 난 누군가의 대접을 받고 싶었고, 자식으로서의 의무를 마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시댁을 떠나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늘 대접해야 하는 사람으로 남아야 했고, 떠나는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고 쓸쓸히 돌아서는 사람이어야 했다.

배틀에서 백기를 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의 삶도 나의 삶도 달라졌다.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희생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만드는 불공정함을 더이상 저지르지 않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터득한 지혜가 타인에 대한 배려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시아주버님 식구들이 주마다 방문하는 일 따위는 없어졌다. 잦은 방문이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함께 식사하는 일도 줄었다. 심지어 밥을 먹고 가라며 옷깃을 잡아도 뿌리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를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


살아보니 20년의 시집살이는 설움을 쌓아가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 시간은 쌓인 설움을 덜어내는 해탈의 시간이었다. 시집살이 배틀에서 승리를 자신했던 나는 백기를 들기로 했다. 더이상 시집살이의 설움을 적을 수 없을 것 같으니 말이다.


누구나 미운 정과 고운 정을 골고루 섞어 오랜 시간 먹다보면 세상의 모든 맛에 익숙해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맛에 거부감이 사라진다면 살아가는 일 또한 편해질 것이다.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살아가는 삶이 바보같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세상의 설움을 옅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아수라장속에서도 악으로 살지 않는 삶이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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