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께서 한턱내겠다는 이유.

자유에 대한 열망?

by 은빛구슬
사랑이 만든 감옥

어머니께서 자식들의 사랑으로 집안에 갇힌 지 반년이 넘었다. 그 기간 동안 어머니는 단 3번의 외출로 바깥세상의 공기를 접했으며 그마저도 필터를 통해 걸러낸 세상이 전부였다.


어머니의 외출을 막은 것은 남편의 염려만이 아니었다. 시아주버님이고 시누이고 누누이 전화를 걸어 어머니의 외출을 막으셨기에 어머니는 바깥세상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기셨고, 성에 갇힌 공주처럼 대문 밖을 천릿길 낭떠러지로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어머니는 코로나가 만들어낸 공포에 자신의 삶을 저당 잡힌 채 감옥 아닌 감옥에 갇혀 지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그 생활이 어머니의 삶을 완전하게 옥죈 것만은 아녔다는 거다. 자유가 제한된 것 같은 삶 속에서도 어머니께서는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셨고, 간간히 마당을 돌며 고추며 상추를 길러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그런 어머니를 위해 시누이와 시아주버님은 필요한 것을 택배로 보내주셨고, 남편 역시 뭐든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만 하라는 식으로 어머니께서 느끼실 답답함을 위로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받기만 하는 것으론 편해질 수가 없다. 받은 만큼 베풀고 싶은 게 인지상정인데 집에 갇힌 어머니께선 그걸 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던 것이다.

시누이가 보낸 기정떡.


며칠 전 초복에는 시아주버님께서 어머니 드시라도 고기를 사 오셨다. 남편과 나는 시어머니 덕에 고기를 맛나게 구워 먹었다. 고기를 드시던 어머니께서는


"여름에는 이렇게 힘이 나는 음식들을 먹어줘야 해. 다음에는 내가 한턱 쏠 테니 말해 봐라. 너희들은 뭐가 먹고 싶냐?"


어머니의 말씀에 남편은 또


"어머닌 고기 말고 또 뭐가 드시고 싶은데요? 말해 봐요. 제가 사드릴 테니"


"아~니, 내가 한 턱 쏜다고." 어머니 말속에 짜증이 섞였다.


"얼마 전에 은행에서 전화가 왔더라. 만기 된 적금 찾아가라고. 그동안 은행을 하도 안 가서 은행에선 나한테 뭔 일이 있는 줄 알더라. 통장도 정리할 겸 겸사겸사 은행엘 한 번 다녀와야겠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께선 노래 교실이 끝나면 수시로 은행에 들러 돈을 찾곤 하셨다. 조금씩 찾은 돈으론 과자나 음료 같은 간식을 사서 집에 들어오곤 하셨는데, 코로나 이후에는 노래 교실은커녕 외출조차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니 그런 소소한 재미마저 먼 세상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머니의 외출이 금지된 동안 통장에는 다달이 돈이 쌓였다. 바깥출입이 두려웠지만 바람이라도 쐬려면 핑곗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굳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라고 하시면서까지 은행엘 가시려는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두 마음이 공존할 거다. 하나는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코로나를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꼼짝을 못 하냔 말이야' 하는 마음과 '혹시 병에라도 걸려 다른 식구들에게 피해라도 주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첫 번째 마음으로는 맘껏 외출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두 번째 마음에 이르게 되면 주저할 수밖에 없다. 외출하고자 하는 마음을 스르르 접어야 한다.


어머니의 외출


어머니의 말씀에 아직은 좀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하던 남편이 식사 후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께서 많이 답답하시겠지? 내일이라도 아침 일찍 다녀오시라고 할까?"


나야 남편이나 어머님이 너무 몸을 사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두 사람의 코로나 대응법을 바라보고 있었던 터라 잠깐의 외출 정도는 마스크만 잘 쓰고 다녀오면 괜찮을 거라 말했다.


남편이 어머니께 날씨 좋은 날 아침 일찍 은행엘 다녀오시라고 말씀드리니 어머니의 표정이 밝아지셨다. 그러면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생각해 놨다가 말만 하라고 하신다. 어머니께선 본인 입으로 나이 드신 분들이 조심성도 없이 밖엘 나다닌다며 흉을 보셨지만 실은 자신도 자유롭게 외출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던 거다.


요 며칠 장마로 비가 오락가락한다. 아직 어머니께선 은행엘 가지 않으셨지만 은행엘 다녀오시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사주실 것이다. 어쩌면 나에게 적금의 일부를 용돈으로 주실 지도 모른다. 어찌 되었건 어머니의 외출은 어머니나 나나 모두에게 기쁜 일이다.


이렇게 목소리를 높이면서까지 우리를 향해 한턱 쏘고 싶어 하셨던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받는 기쁨보다 주는 기쁨에 대한 열망이 들어 있었고, 사랑의 이름으로 발목 잡혔던 자유에 대한 갈망이 숨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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