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를 준비하여 물과 간장, 물엿을 1:1:0.5의 비율로 넣고 양파와 청양고추, 표고버섯 말린 것, 다시마를 넣어 팔팔 끓였다. 양념물이 끓어올랐을 때 식초와 소주를 0.5:0.5의 비율로 넣고 거품이 오를 때까지 살짝 끓인 후 미지근하게 식혀 둔다. 식힌 양념물을 삶아 둔 두릅에 부어주기만 하면 요리는 끝이다. 계량컵도 비법도 필요 없는 평범한 주부의 눈대중 요리법이다.
이렇듯 난 계절마다 그 계절에 어울리는 재료로 장아찌를 담근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건 결혼 초까지만 해도 난 장아찌를 좋아했던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좋아하지 않았을뿐더러 당장 먹을 것도 아닌 것을 애써 만든다는 자체도 싫어했다.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1년도 넘게 저장해 두어야 하는 음식을 미리 만들어 두는 수고는 비효율적이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만 여겨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장아찌의 가치를 한껏 폄하했던 내가 이제는 계절마다 장아찌를 담그는 사람이 되었다.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은 신혼 초 어머니의 마늘종 장아찌를 시댁의 대표 메뉴라며 자랑했다. 하고 많은 음식 중에 왜 하필 장아찌를 한 집안의 시그니처 음식이라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집안의 대표 메뉴라면 적어도 보통의 가정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음식이라든지, 건강에 특별히 좋은 음식, 아니면 조상 대대로 이어온 음식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그런 반면에 남편이 말한 장아찌는 평범해도 너무 평범한 거기다 건강까지 장담할 수 없는 음식으로 보였던 것이다. 그러니 장아찌에 대한 나의 기대 같은 건 애당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런 장아찌도 시나브로 먹게 되니 그 새콤 짭조름한 맛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삼겹살을 구울 때면 갈색으로 예쁘게 물든 마늘장아찌 하나 정도는 넣어줘야 느끼한 맛을 잡을 수 있었고, 입맛 없는 여름날이면 찬물에 훌훌 만 밥을 새콤하게 무쳐낸 오이장아찌와 먹는 것만으로 집나갔던 입맛 녀석을 잡아올 수 있었다. 그뿐이랴 막 지어낸 밥은 고춧가루와 참기름 마늘 등의 양념만으로 휘릭 비벼낸 고추와 마늘종 무침 하나면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밥 한 그릇도 뚝딱이다. 그런 소소한 행복 때문인지 이후 나는 닥치는 대로 장아찌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장아찌를 만들었을 때는 어머님의 방식대로 간장, 된장, 고추장 모두를 사용했었다. 그런데 된장에 넣은 장아찌는 그 깊은 맛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짰으며, 고추장 장아찌는 낭비되는 고추장으로 인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꼴이 되었다. 그나마 간장으로 담은 장아찌가 간을 조절하기에도 수월했고, 가격 면에서도 만족스러워 지금까지 계속 이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퇴근 후 저녁 식사는 늘 걱정이다. 이럴 때 미리 담가 둔 장아찌는 요긴한 반찬이 된다. 덧없는 수고를 하게 만든다 하여 비효율적이라 여겼던 장아찌는 1년 후면 비상식량으로써의 화려한 가치를 발휘한다. 마땅한 반찬이 없을 때, 새로운 맛을 느끼고 싶을 때 꺼내 먹는 장아찌는 그야말로 일품이다.
매실장아찌
마늘종 장아찌
매실, 고추, 마늘종 장아찌
시어머니의 손맛을 닮아간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여자들이 그렇겠지만 결혼 전에는 특별히 요리라 말할 수 있는 음식은 만들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그저 남자들도 할 수 있다는 라면을 끓이는 정도였다고나 할까? 하지만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을 먹고 자랐고, 그 음식에 익숙해져 있었기에 당연히 손맛은 엄마의 손맛을 닮을 줄 알았다.
그러나 입으로만 느꼈던 엄마의 손맛은 내 손을 거치지 않았기에 그 맛을 잃었고, 어머니에게서 하나 둘 배운 음식은 나의 손을 거치면서 어엿하게 나의 손맛이 되었다.
결혼 후에도 친정 엄마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 여자들은 친정 엄마의 손맛을 닮아갈 지 모른다. 그러나 시집살이를 하며 시집 식구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야 했던 나는 이제는 친정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의 손맛을 닮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