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작은 선물에도 행복합니다.

홈쇼핑에서 나에게 선물을 보냈다.

by 은빛구슬

"봄도 되는데 나 옷 하나만 사 주지?"

턱 밑까지 얼굴을 들이밀고 생글생글 애교를 떤다.


"왜? 돈 버는 사람이 자기 옷 정도는 좀 사 입어."

남편의 대답은 냉정했다.


나는 일하는 사람이다. 일 한 대가로 돈도 번다. 그런데 난 항상 가난하다. 가족을 위해 생활비를 내는 것도 아니고, 친정 엄마에게 넉넉히 용돈을 드리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늘 돈이 없다.


비겁하게도 내가 번 돈은 나에게 눈만 맞추고 사라지는 마술을 부린다. 내가 자신을 붙잡으면 절대 놓아주지 않으리란 걸 직감이라도 한 듯 빈틈을 보이지 않는 주도면밀함까지 보인다.


내가 번 돈에는 남편의 몫이 없다. 시어머니의 몫도 없다. 단지 아이들과 나를 위한 보험이 있고, 아이들의 주택청약과 쥐꼬리, 아니 쥐꼬리 끄트머리만 나의 적금이 있다. 그리고 또 돈은 없다.


아니다. 나는 자영업자이기에 가족 명단에서 제외된 채 홀로 내는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이 있다. 학원을 유지하는데 드는 전기세며 관리비도 있고. 1년에 한 번씩 내는 면허세, 건물과 토지에 붙는 재산세, 자동차세... 이런! 고정 지출비가 여기저기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네. 여행이라도 가자며 만든 모임에, 단순 친교를 위한 모임, 그리고 후원금까지.


어디로 새는지 모르겠던 나의 돈들도 적고 보니 자기 나름의 목적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경제에 눈 뜬 사람들은 가계부 적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나 보다. 이렇게 돈은 벌지만 돈이 없었던 이유에는 다 쓰임을 찾아 떠난 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일은 하지만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자기가 번 돈으로 집을 옮겼다는 옆 영어 학원 선생님처럼 내 학원도 잘 나갔다면 집은 못 바꾸었을지언정 남편의 차 정도는 바꾸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봉급 생활자의 넉넉한 봉투보단 마음의 여유를 택한 나로선 이 정도의 수입만으로도 만족하려는 안일함을 보였다. 믿는 뒷배 남편도 있었다. 그래서 결국 앞으로 전진하기보단 안주하려는 의지 부족이 내 수입을 결정짓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아가려 한다. 변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 이상 그어놓은 한계선은 밟고 넘어야 한다. 그 선을 넘는 동안은 아직 가난해야 하지만.


그래서 저런 어쭙잖은 애교라도 부려 옷 한 벌이라도 얻어 입으려 한 것인데 결과가 꽝이니 허탈했다.


그런데 행운의 여신은 엉뚱한 곳에서 나에게 눈길을 주었다.


"막내야, 이리 와 봐라"


안방에 계신 어머니의 목소리다. 어머니께선 거의 한 달을 노래교실에도 가지 못한 채 집 안에만 계신다. 나름 그림도 그리시고 목청껏 노래도 부르시지만 답답한 마음은 어쩌실 수 없을 것이다.


"왜요?"


"저기 좀 봐라. 저 옷 좋아 보이지 않냐? 소재도 좋은 거 같고 가벼울 것 같은데 니 보기엔 어떠냐?"


"괜찮은데요. 봄이니까 밝게 입어도 될 거 같고요."


"그렇지, 홈쇼핑이 아니면 저 돈에 어찌 저런 옷을 사 입겠냐?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싸단 말이야... 말을 들어보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어머니께서 옷 구입을 망설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어머니께서 다니시는 노래교실의 친구분들은 외모에 관심이 많으시다. 그래서 옷이라도 사 입고 오는 날이면 어디서 샀는지, 얼마에 샀는지 꼬치꼬치 물으신단다. 그런 질문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어서 묻는 거 자체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일 거 같은데, 나이를 무기 삼아 염치까지 내려놓으신 분들인 거 같다. 그래서 어머니는 은근 걱정이 되신다. 옷은 좋아 보이는데 가격이 너무 싸다. 백화점에서 얼마에 샀다느니 하면서 자랑하는 할머니들 틈에 어머니의 홈쇼핑 옷 가격은 내밀 수 없는 명함인 거다.


"에이, 마음에 안 들면 집에서라도 입지 뭐. 시켜봐라."


사실 저 말도 진심은 아니라는 걸 안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든다 해도 정장 재킷을 어떻게 집에서 입는단 말인가? 억지스럽게 입는다면야 모르지만. 그러면서 말씀하신다.


"너도 하나 봐라. 내가 사 줄게. 저 정도면 좀 싸냐? 백화점에서 사면 우리 두 벌 값으로 한 벌도 못 산다


"저는 괜찮은데요"


괜찮지 않다. 얼른 주문하고 싶다. 마음은 이미 춤을 추고 있는데.


그렇게 어머니 옷을 주문해 준 대가로 나는 옷 한 벌을 얻어 입었다. 어머니 말씀대로 싼 옷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다.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지만 그런 마음은 아닐지라도 공.짜, 불로소득은 금액에 상관없이 날 행복하게 만든다.


거기다 용돈까지 받았다. 다가오는 내 생일 선물을 당겨서.

이 또한 행복하다.


히히히.

어라, 글자가 웃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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