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날려버린 시할아버지 제사

시리즈 2탄.

by 은빛구슬
'날려버린' 시리즈 2탄

줄줄이 취소되는 집안 행사로 '날려버린' 시리즈가 만들어질 거 같다. 시어머니의 생신이 취소되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날려버린 시어머니의 생신'이란 글을 쓴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제사까지 날아갈 거 같다. 제사가 날아가니 기쁘지 아니한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제사가 날아가도 나에게는 간 단 하 게가 남아있다.


저 말 '간단하게'가 얼마나 복잡하고 애매한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그것은 마치 "무엇을 먹을래?" 할 때 "아무거나"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그대들은 아는가? '아무거나'는 귀신도 모르는 말이란 걸.


어제 오전까지만 해도 아무 말이 없었다. 큰 아주버님께서 생신은 취소했더라도 제사는 지내야 할 것 같다 하여 토요일에 있는 시할아버지 제사는 그대로 진행되는 걸로 결정을 봤다. 그런데 시어머니께서 자식을 너무나 사랑하여 그 결정을 엎어버렸다. 이제는 건강한 사람도 안전하지 않다는 게 취소 이유였다.


안전 불감증은 문제다. 그러나 지나친 과잉 반응도 문제라 생각한다. 집안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건 집안만큼은 안전하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집안에서 건강한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는 게 그리 문제가 될까?


문제로 따지면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업무를 보는 남편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런데 어머니께선 최고 위험군인 남편과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활하고 있다. 마스크에 물이 차는 수고도 마다 않고 마스크를 쓴 채 수업을 하는 나나, 긴 방학에 연구실에도 가지 않고 계실 아주버님, 약국에서 마스크는 판매하고 있으나 건강을 최고로 챙기는 형님 중 최고 위험군은 없다고 본다. 설마, 감기 환자라도 만났을지 모르는 형님 때문에 제사가 취소된 거?


제사 음식을 차리는 일은 힘든 일이 아니다. 몸으로 하는 고생은 경력 20년의 주부에겐 잠깐의 고생이면 금방 지나가는 일상과 같다. 그런데 얼굴을 굳게 만드는 마음의 불편함은 물 흐르듯 지나갈 일이 아니다. 생활하면서 잊고 지낸 시집살이를 또다시 실감하게 하는 일이다.


'왜? 항상 나만?' 이런 마음이 불편하다. 생신이나 제사, 지내지 않을 거면 완전히 날려버려야 한다. 그런데 어머니께선 왜 자꾸 '우리끼리, 간단하게'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힘들어서 하는 투정은 아닌데 갑자기 시장 보고, 음식 만들고, 설거지. 간단하게 할 저 일이 날 부담스럽게 만든다.


나란 인간은 감성의 지배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하는 나약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반성하고.. 이해했으니.. 극복했다 생각하는 일에 또다시 흔들린다. '시집살이가 아니야. 그냥 집안일이야.' 하다가도 급 서운함을 느껴버린다.


우리끼리 간단하게

'우리끼리 간단하게 지내자'는 얘기가 복잡하고 애매한 말이긴 해도 해석 불가능한 말은 아니다. 우리끼리는 우리 식구끼리 하자는 말이다. 가족의 일이란 뜻이다. 남의 일도 아니고 우리 가족의 일인데 안 하고 배길 수 있겠는가? 굳이 시집살이를 해서 겪는 일이라고 이리저리 엮어 나 자신을 불쌍한 며느리로 만드는 비겁함은 저지르지 말자. 난 시집살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오늘 저녁에 장을 볼 땐 그동안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것을 꼭 찾아내어 카트에 던져 넣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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