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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15. 2020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허락한 이유

황당한 사건.


내가 겪은 황당한 일


다른 집 아이들도 그런가? 아니면 우리 집 아이들이 특이한 건가? 우리 집 아이들은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갈 때면 늘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화장실에서 샤워 소리를 뚫고 나온 음악 소리가 이어폰을 통해 듣는 음악과는 비교가 안 된다는 듯 샤워를 할 때면 늘 샤워기가 쏟아내는 물소리를 배경 삼아 노래를 듣는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습기 많은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가져가면 어떡하냐고 잔소리를 한다. 나의 말에 아이들은 어이없다는 듯 콧방귀를 뀐다. 물에 빠져도 작동하는 게 요즘 스마트폰인데 습기 따위를 걱정하느냐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난 여전히 화장실에서 음악을 듣는 아이들이 불만스럽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꾸어 놓은 사건이 발생하고 말았다. 그건 화장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허하도록 만든 황당한 사건이었다.   


"살다 살다 별일을 다 겪네. 집에서 이런 일을 겪었으니 망정이지 밖에서 겪었다고 생각해봐. 잘못한 일도 없이 봉변당할 뻔했잖아"


동그랗게 구멍이 난 화장실 문을 한참을 쳐다보던 내가 중얼거렸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난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는데 일은 발생했다. 남편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했지만 난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날이 특별한 날이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그저 그런 평범한 날 하루였다. 남편이 샤워를 하고 나왔고, 뒤이어 내가 들어갔다. 샤워를 마친 내가 속옷을 입고 화장실 문을 열 때였다. 척! 문이 열리지 않았다. 손잡이를 다시 돌렸다. 척, 척. 12시 방향에서 멈춘다. 남편이 장난을 치고 있다 생각했다.


"아, 뭐예요? 장난치지 말고 빨리 문 열어요."

"왜 그래. 뭔 일이야?"

"문이 안 열린다고요. 장난하지 말고 빨리 열어요"

"문이 안 열려? 손잡이를 돌려봐."

"뭔 손잡이요. 손잡이는..."


그랬다. 이 문은 내쪽에서 열게 되어 있는 문이다. 내가 손잡이를 돌려야 열리는 문이다. 그런데 지금 그 손잡이가 돌아가지 않아 문이 열리지 않는 것이다. 남편이 장난으로 문을 잠갔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문이 내 쪽에서 잠겨버린 것이다. 동그란 손잡이에 참외배꼽처럼 볼록 튀어나온 부분을 눌러야 잠겨지는 손잡이가 배꼽이 앞으로 튀어나와 있는데도 열리지 않는 것이다. 고장이 난 것인가?


"아무리 돌려도 안 열려요. 그쪽에서 열어봐요. 열쇠 없어요? 열쇠 찾아서 열어봐요."

"잠깐만"

남편이 열쇠를 찾으러 갔다. 돌아온 남편이 열쇠를 꽂아 돌려봤지만 열쇠가 돌아가지 않는다. 열쇠로도 열 수가 없다니. 남편은 손잡이가 통째로 고장이 난 것 같다며 오늘 밤은 어쩔 수 없이 화장실에서 자야 할 것 같다고 나를 겁주었다. 그러나 걱정하지 않았다. 워낙 믿음직한 남편이니 문을 부수어서라도 날 구해줄 거란 믿음이 있어서이다.


남편이 연장을 들고 와 문을 열기 시작했다. 망치로 손잡이를 내리치는 소리가 조용한 집안을 뒤흔들었다. 쾅! 쾅! 쾅.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묵직하게 울리는 소리는 무서웠다. 드라마를 보면 머리핀 같은 것을 꽂기만 해도 쉽게 열리는 문의 손잡이가 몇 번의 망치질에도 떨어져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헉헉거리는 남편의 숨소리를 들으면서 엉뚱한 상상을 했다. '이런 일로 119를 부르면 화를 내겠지, 그냥 전기톱으로 내 몸이 빠져나갈 수 있게 구멍을 뚫어야 하는 건 아닌가' 히면서 말이다. 오만가지 상상으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나를 깨우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 손잡이가 떨어질 테니까 잡아" 드디어 손잡이가 떨어졌다. 화장실 문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렸다. 그런데 문제는 손잡이가 떨어졌는데도 여전히 문은 열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편의 2차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제는 문과 벽 사이를 연결하고 있는 연결고리를 뽑아내야 한다. 구멍 속을 들여다보니 손잡이에서 떨어져 나간 철심이 문과 벽 사이를 연결하고 있었다. 그 철심을 벽에서 뽑아내야 문이 열린다.  남편은 집에 있는 연장을 동원해 철심을 뽑으려 했다. 쉽지 않았다. 내 잘못도 아닌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새 주둥이 모양의 연장으로 삐져나온 철심을 잡아당겼다. 뺀치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것저것을 번갈아가며 철심을 잡아 뽑기를 반복했다. 남편은 다시 샤워를 해야 할 정도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남편의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문이 열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내 마음이 통했는지 철심이 빠졌다. 문이 열렸다. 화장실에서 탈출한 나는 고마움에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고생했어요'라는 말과 함께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널브러진 연장에 자잘한 철 가루들. 그러다 생각보다 상처가 없는 구멍의 모습에 놀랐다. 쾅쾅거린 소리만으로는 어디 한 쪽이 어긋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자신의 노련함 덕이라고 공치사했다. 맞는 말이다. 난 또다시 남편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나를 화장실에서 탈출시켜줘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그런 일이 있은 후 생각했다. 만약 남편이 방에 없었을 때 그런 일이 생겼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집안이 떠나가도록 문을 두드려 내가 화장실에 갇혔다는 걸 알려야 하나? 집에 사람이 없을 때라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데 서랍장에도 화장지가 없다면?(비데도 없다면)


그 이후로 아이들이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들고 가는 걸 막지 않기로 했다. 내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아들이 화장실에서 화장지를 찾을지 모르고(우리 집은 내 방과 부엌이 끝에서 끝이다), 속옷을 가져가지 않은 딸이 속옷을 찾을지도 모른다. 늘 '스마트폰이 문제야' 했는데 스마트폰의 기능은 내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음악 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는 샤워 소리도 기쁜 마음으로 들어줘야겠다. 언제 어디서 어려움을 겪을지 모르는데 구원이 되어줄 스마트폰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이제는 아이들에게 명령해야 한다. 화장실 갈 때 스마트폰을 허하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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