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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25. 2020

그날, 난 환자가 아니라 봉제인형이었다

잘 꿰매 주세요.


 드라마가 끝났다

 

 안개 자욱한 강 위, 한 척의 배가 놓여있고 그 위에는 두 남녀가 말없이 앉아있다. 남자는 검은 옷의 저승사자요, 여자는 출산을 앞둔 임산부다. 배의 목적지는 저승이며 여자는 저승의 강 너머 사후 세계로 향하고 있다. 젊은 그녀가 저승의 배를 탄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출산을 앞둔 임산부라는 데 있다. 자신이 탄 배의 정체를 알아차린 그녀가 혼비백산하여 두 팔로 강물을 세차게 저은 탓에 그녀는 사(死) 후 세계로 들어가지 않고 산(生) 후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참으로 기발한 아이디어라 하겠다. 우리는 보통 여자가 출산하는 일을 두고 저승의 문턱을 보고 오는 일이라 하지 않는가. 그런 면에서 드라마 <산후 조리원>은 출산의 절박한 순간을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법으로 이미지화시켰다 하겠다. 죽음의 기로에 선 그녀가 저승의 강을 건너지 않고 산(生) 후의 세계로 돌아와 산(産) 후 세계를 경험하게 된 이야기가 산후 조리원의 주내용이다.


 나의 드라마

 

 드라마를 보는데 나의 산후조리원 때의 일이 떠올랐다. 불과 20여 년 전 일인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던 일이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는 동안 아득했던 그 일이 시네마 천국의 낡은 필름 돌아가듯 내 눈앞에 선명하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드라마에서는 산후 조리원을 다른 의미로 천국(모성의 천국)이라 표현했지만 산후 조리원을 퇴원함과 동시에 만만하지 않은 육아를 경험하게 된 모든 산모들은 그곳이야말로 진정한 천국이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편했던 때가 언제였나를 꼽으라고 하면 그곳에서의 생활이 제일 먼저 떠오를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천국에서 난 내 몫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누리지 못한 안타까운 경험을 했다. 첫 출산이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고, 무지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나에게 산후 조리원은 분명 기분 좋은 천국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둘째를 낳게 된다면 다시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겠단 다짐도 했다. 다음 이야기는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뻔뻔해질 수밖에 없었던 둘째 출산 때의 일이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됨과 동시에 나에게서 사라진 것은 무서움이었다. 어쩌면 그건 앞으로 지켜야 할 대상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자기 암시가 스스로 작용한 탓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무서움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창피함마저 사라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사건이 둘째 출산 때 일어났다. 그것을 상황이 만들어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때의 난 참 뻔뻔했구나란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맨 정신에 의사 선생님과 그런 대화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수술은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출산을 함에 있어 수술과 자연분만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수술을 통해서는 자신의 출산 과정을 직접 경험해볼 수 없지만 자연분만으로는 그 과정을 스펙터클하게 경험하니 말이다. 그 경험은 썰렁한 분만실에 혼자 덩그러니 놓이는 순간에서부터 시작된다. 출산이라는 것은 첫 경험도 무섭지만 그 고통을 알기에 두 번째 경험은 더 무섭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느낀 분만실은 늘 써늘하고 차가웠다. 간호사들의 준비가 끝나고 아이가 나올 기미가 보일 때쯤이면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는데 그다음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의사 선생님보다 산모의 몫이 더 크다. 수술이 아닌 이상 그 공간의 지배자는 산모여야 했다. 산모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힘을 쓰는 일이나 고통을 참아내는 일을 오롯이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한다. 저승의 강 위에 놓인다 해도 정신줄을 놓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경험을 몇 차례 겪다보면 어느새 몸 안의 모든 장기가 송두리째 빠져나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때가 바로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세상의 빛을 경험하게 된 아이의 울음과 아이를 낳은 엄마의 울음은 환희와 경이로움으로 저울 위에서 동등한 무게를 자랑한다.


 "아들입니다"란 말에 감격하며 눈물을 찔끔거리다 문득 첫째 산후 조리원 때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난 다짐한 것이 있었다. 지금이 어떤 상황이고 나의 위치가 어떤 상태인지 따질 겨를도 없었다.


 "저기요,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혹시 지금 절개된 부분 꿰매고 계시나요?"


 "네"


 "제가요 첫째 출산 때 회음부를 꿰맨 실이 녹지 않아서 엄청 고생했거든요. 의사 선생님께선 녹는 실로 꿰매는 거라 편할 거라고 하셨는데 웬일인지 꿰맨 부분이 계속 아팠어요. 저는 실 때문에 아픈 것인지도 모르고 출산을 하면 원래 그렇게 아픈 것인가보다 했어요. 나중에 그곳에 고름이 생겨 병원엘 찾아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왜 빨리 병원엘 오지 않았냐며 야단을 하셨어요. 고름을 빼주시는데 얼마나 아팠던지 아이를 한 명 더 낳는 게 낫겠단 생각까지 했다니까요. 그러니 선생님께선 거기를 진짜 잘 꿰매 주셔야 해요"


 "아이고, 엄청 고생하셨네요. 간혹 그런 일이 있기는 한데. 이번에는 그런 일이 없도록 제가 꼼꼼하게 꿰미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 실도 잘 녹을 겁니다.


 그렇게 난 장막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창피함도 잊은 채 얼굴도 모르는 의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때 내 말이 의사 선생님의 손을 더 부지런히 움직이게 했는지 촘촘하게 꿰매진 부분은 실이 잘 녹아 아픔 따윈 전혀 남기질 않았다. 이후 조리원에서 몸이 아프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상황이라는 것이 사람을 용감하게 만들기도 한다. 둘째 출산 때의 내가 그랬다. 당연히 해야 할 말을 하는 게 무슨 용기냐 싶겠지만 그런 말조차 쉽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때 난 그 말을 했기에 다시 겪었을지 모르는 아픔을 피할 수 있었다. 민망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대화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산후조리원의 끝맺음을 보며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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