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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Dec 05. 2020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취미

나만 심장이 떨리네

낮은 목소리가 더 무섭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끝낸 후 토요일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텔레비전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부엌 옆 공방에서 다급하게 나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엄마'라고 부른 것도 아니고 그냥 짧게 '엄마'였다. 목소리 하나에 심장이 떨렸다. 그냥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심장이 나댄 것이다. 가끔은 목소리만으로도 상황이 판단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가 그랬다. 공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눈으로 확인하진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 상황이 짐작되었다.


 잠시 후 부엌으로 들어온 남편의 모습에 기겁을 했다. 나의 손발은 이성을 잃고 덜덜거렸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목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만 공기 속을 맴돌았다. 남편의 왼팔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높이 쳐든 손에서는 빨갛게 물든 화장지를 타고 끊임없이 피가 흘러내렸다. '하느님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심장은 달릴 줄만 알았지 진정할 줄 몰랐다.


"어머니 모르시게 빨리 방으로 가" 남편은 이 한마디를 던지고 우리 방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남편을 따라 방으로 와서 119를 부르려고 했는데 근처 응급실로 가는 것이 빠를 것 같다는 말에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방을 나왔다. 어머니 방 앞에서 근처에 잠깐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집을 나왔다. 혹시라도 어머니께서 문을 열고 나오실지 몰라 대답도 듣는 둥 마는 둥 나온 것이다. 어떻게 운전을 했을까? 말 한마디 없이 운전대만 부여잡은 채 오다 보니 응급실 앞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들어가려는데 직원이 막아섰다. 응급실 앞에는 구급차가 드나들어야 하니 차를 주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범벅이 된 팔을 보고도 느긋하게 말하는 직원의 목소리가 야속했다. 다른 때 같으면 규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을 비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그냥 보내달라고 떼라도 쓰고 싶었다. 다행히 직원이 남편을 먼저 데리고 들어갔기에 나는 병원 주차장으로 차를 돌릴 수 있었다.


 주차를 하고 응급실로 들어가니 팔을 든 채로 손을 소독하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다섯 손가락이 멀쩡했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화장지로 피범벅이 된 손을 봤을 때는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잘못되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비로소 온몸이 피가 제대로 흐르는 것처럼 따뜻해졌다. 의사 선생님의 말도 귀에 들어왔다. 의사 선생님은 뼈를 다친 것은 아니나 인대가 끊어진 것 같으니 수술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수술은 당장 급한 건 아니고 24시간 이내면 된다고 했다. 숨이 제대로 쉬어졌다. 다행이라며 웃으면서 대화할 여유도 생겼다.


 집으로 가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학 병원으로 갔다. 수술을 할 수 있으면 늦은 시간이라도 수술을 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안일했다. 대학 병원에는 아픈 사람이 참 많다. 내가 원한다고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병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익숙해지지 않은 기다림. 응급실에 도착하여 전공 선생님을 만나기까지 꼬박 1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긴 기다림 끝에 만난 선생님에게서 들은 답은 기다린 보람도 없게 황망했다. 그 대학 병원에는 손을 전문으로 수술하시는 분이 안 계시니 손을 전문으로 하는 병원으로 가라는 것. 전화로 소개는 해 주었다. 대학 병원은 어떤 수술이든 가능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아프지 않으니 내 집 주변에 손 전문 병원이 있었는데도 모르고 엉뚱한 병원을 빙빙 돌았다는 것도 알았다. 내가 관심이 없으니 내 눈 앞 존재한 거대한 건물을 보지 못한 것이다.


 다음날, 남편은 수술을 했다. 간단해 보인 수술은 간단하지 않았고, 3~4일 이면 가능할 줄 알았던 퇴원은 내일이면 다시 토요일. 사건 발생 후, 일주일의 시간이다.


 남편이 물건을 하나씩 만들어 줄 때는 좋았다. 그런데 남편의 취미가 이렇게 무서운 취미가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만약 조금만 더 스쳤다면...


 남편의 취미보다 무서운 취미가 또 있을까? 이제는 원하는 걸 만들어준다고 해도 싫다. 난 아직까지 공방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남편의 최근 작품. 이때만 해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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