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의 세뱃돈

돈에 약해지는 마음이라니.

by 은빛구슬
설 연휴가 지났다.

기나긴 설 연휴를 보냈다. 그 시간이 길어 충분히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나가 버린 것을 속 시원하게 털어내지 못해 자꾸만 뒤돌아보게 된다. 누렸으면 미련 없이 버려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누린 만큼 파장이 커진 모양이다.


나의 연휴가 길어진 데는 이유가 있다. 설이 빨간 글자를 불러와 휴일의 시간을 채워 주었다면 나는 학원 방학이라는 휴일을 설 앞에 배치하여 그 시간을 늘렸다. 꽉 찬 일주일로 휴식의 시간을 채운 것이다. 모처럼 제대로 된 휴식을 갖게 되었다는 생각에 몸까지 짜릿짜릿했다. 비록 그 기간 동안 온전히 쉰 것만은 아니어서 휴식의 시간을 맘껏 즐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해보단 훨씬 편한 마음으로 설을 보냈으니 이 정도면 만족스러운 설이었다 자신할 수 있다.


이번 설은 진심 특별했다. 설을 이렇게 보내도 되나 싶을 정도로 마음이 편했으니 말이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만의 잔치를 벌였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큰형님네도, 둘째 형님네도, 고모네도 오지 않았다. 그저 택배가 오고 계좌이체로 돈이 들어왔을 뿐이다. 명절 전에 큰 아주버님과 조카가 잠깐 얼굴을 보였고, 서울 사는 조카가 할머니 얼굴을 보겠다고 와서 마스크를 쓴 채 대화를 하고 갔을 뿐이다.


차례상에 오를 음식은 당연히 나와 남편의 몫이 되었지만 부담은 없었다. 형님들과의 수다가 사라진 것이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요리에 능숙한 남편이 있어 알콩이 달콩이 대화를 나누며 손쉽게 음식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심지어 오후에는 시간이 남아 엄마를 보러 갈 시간까지 생겼다. 다른 때 같으면 저녁이 다 되어 갔을 친정을 환한 대낮에 가게 된 것이다. 이 또한 처음 있는 일이라 어색했다. 5인 이상 모임이 금지된 탓에 딸과 아들 중 누구를 데려가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코로나에 민감한 남편이었기에 둘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는데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둘 모두를 데려가기로 결정내렸다.


그런데 또 문제가 생겼다. 엄마가 집에 있지 않고 동생 아파트에 있었던 거다. 엄마에게 집으로 가 계시라 말할 수도 없었고, 동생 집에서 엄마를 모시고 친정으로 갈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동생집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마스크를 썼음에도 대화하는 내내 죄를 짓는 기분이 들어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킬 수가 없었다. 엄마에게 서로 조심해야 하니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말을 하고 나오는데 어찌나 미안하던지. 가족 간에 대화도 맘껏 할 수 없는 현실이 우습도록 서글펐다.


시어머니의 세뱃돈

설날 아침, 차례를 지내고 설거지를 하는데 어머니께서 세뱃돈을 주시겠다고 부엌으로 오셨다. 괜찮다며 극구 사양하는데도 많지 않은 돈이라며 억지로 앞치마 호주머니에 그것을 쑤셔 넣고 가시는 거다. 돈이 많고 적고를 떠나 세뱃돈을 받았다는 자체로 기분이 좋았다. 설거지를 마치고 식탁에 앉아 벙글거리는 내 입 크기로 봉투를 벌려 안을 들여다보었다. 세 장이 들어있었다. 형님들 몫까지 모두 나에게로 왔나 보다.


그리고

봉투가 말했다.

"항상 고맙고 사랑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