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을 위해 가족을 울리지 마세요.
지금 떠올려도 생생한 그날의 기억.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마음속 골 깊게 각인된 그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은 채 이렇게 생생한 기억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날 나는 화장실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똥꼬 바로 앞까지 밀려온 똥은 좁은 문 앞에 막혀 버렸고, 아무리 힘을 줘도 나올 기미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경험해 본 나는 시간이 문제를 해결해 줄거라 생각하고 변기에 자석처럼 달라붙어 엉덩이에 계속 힘을 줬다.
그런데 그날은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아래쪽 똥꼬의 아픔뿐만 아니라 뱃속까지 찌릿거리는 아픔이 동반했기 때문이다. 한쪽 손으로 배를 움켜 쥔 나는 다른 손으론 벽을 밀어붙이며 고통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때 나를 부르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누와 아주버님이 오셨다는 것이다. 나는 아들에게 엄마가 배가 아파 화장실에 있으니 조금 있다 간다고 말하라고 일렀다. 아들은 제대로 들었는지 반응도 보이지 않은 채 쪼르르 나가버렸다.
아들이 돌아간 후 급 후회를 했다. 남편이라도 불러 지금의 상황을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화장실에 있는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어도 내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는 늦었고, 아들은 떠났다.
똥은 똥꼬 앞에서 갇혀 버렸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상황이 이리되니 두려웠다. 화장실에서 힘을 너무 써 죽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떠올랐다. 눈물이 났다. 그래도 다시 힘을 썼다. 배가 아파도 엉덩이에 힘을 줬다. 염소똥 같은 작은 똥 하나가 떨어졌다. 얼굴이 빨개지고 땀이 흘렀으나 계속 힘을 줬다. 퐁퐁 퐁퐁, 콩알만 한 똥들이 연달아 떨어졌다. 그리고 곧 뱃속이 시원해지는 배변의 기쁨을 맛보았다. 살았구나 싶었다. 온몸은 이미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창피한 일이었지만 시원하게 문제를 해결한 나는 의기양양하게 나의 화장실 무용담을 전하기 위해 안방으로 갔다. 그런데 오셨다는 시누와 아주버님이 안 보였다.
아버님께선 화난 얼굴로 나를 아버님 앞에 앉히셨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너 지금 이게 무슨 버릇없는 행동이냐? 사람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ㅇ서방이 왔다는데 내다보지도 않아?"
"아버님 그런 게 아니라 너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있느라..."
"화장실? 시간을 봐라. 1시간이 다 돼 간다. 그 시간 동안 화장실에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냐?"
"그럼 제가 어디 있었겠어요? 정말로 화장실에 있었어요. 똥이 안 나와서..."
"똥을 싸고 있더라도 손님이 왔다면 자르고라도 나왔어야지. ㅇ서방이 어떤 사람이냐? 우리 집에 가장 귀한 손님이 아니냐. 그런데 그런 사람한테 어떻게 그런 무례한 행동을 해?"
"아버님 말씀은 이해하겠는데요. 정말 어쩔 수가 없었어요. 억울해요 아버님."
"듣기 싫다. 가서 네 시누한테 죄송하다고 전화나 해"
아버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편이 웃으며 10년을 같이 산 며느리를 그렇게 모르냐며 나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아버님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고, 속절없이 당한 나는 시누에게 전화하러 간다며 안방을 나왔다.
방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눈물은 났지만 화장실에서의 스펙터클함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내 얘기를 들은 남편은 고생했다고 말하며 와 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버님의 억지 말은 잊으라고 했다.
나와 아주버님(고모부)은 결혼 후 김 씨 집안 가족이 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아주버님은 백년손님이 되어 집에 올 때마다 대접을 받고, 나는 김 씨 집안사람이 되어 그 아주버님을 대접하는 일을 하고 있다.
늘 그랬다.
아주버님은 집안에 가장 귀한 손님이었고, 나는 그 손님을 대접하는 일꾼이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며(모신다는 표현에는 미안함도 포함된다. 도움을 받는 일도 있고 하니) 부모님을 돌봐드린 사람은 나와 남편인데 대접은 항상 다른 사람들이 받고 있다.
내가 고모는 결혼을 잘했다고 말씀드렸을 때 어머님께선 자랑처럼 결혼 당시의 얘기를 꺼내셨다.
좋은 사람을 찾기 위해 선을 얼마나 봤는지. 큰 아들에게 시집보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쓰셨는지. 하나뿐인 귀한 딸이라 신경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랑은 시집살이하는 며느리 앞에서 해선 안 되는 얘기였다. 큰 아들이 싫은 이유에는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시집살이가 포함되어 있었다. 시집살이, 딸은 안 되고, 며느리는 된다는 얘기이다.
남편이나 어머니는 드라마에서처럼 구박이나 학대를 받지 않으면 시집살이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나에겐 시집살이를 하지 않아 좋겠다고. 시집 잘 왔다고 한다. 그러나 시집살이는 시집에서 살면 시집살이가 되는 것이다. 구박을 당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아버님 말씀처럼 아주버님은 손님이다.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을 정중히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손님을 대접하느라 식구를 울려서는 안 된다.
그날 변비의 악몽만 없었다면 아버님은 늘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을 텐데... 하늘나라에 계신 아버님께는 죄송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