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들이 원치도 않은 보양식을 만들었다. 초복에 먹은 능이 백숙이 신통치 않아서다. 집에서 한 음식이 아니고 식당에서 포장해 와 끓인 음식이어서 그런 거라 생각했다. 평소처럼 집에서 만들어낸 음식이면 다를 거란 생각을 했다. 오판이었다. 아들은 식당이니 집이니 하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이 백숙이라는 게 문제였다. 단지 백숙이 아들의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이었던 것이다. 몇 년을 깔짝거리며 먹는 음식을 건강에 좋다는 식으로 먹여왔다. 이 정도는 먹어줘야 여름을 이겨낼 수 있다는 증명 불가한 이론을 내세우면서 말이다. 닭고기로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식 중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백숙인데 건강에 좋다는 이유로 선택했다. 닭백숙은 쉽게 시켜먹을 수 있는 치킨이나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닭볶음탕과는 달리 기력이 약해지는 여름에 가장 적합한 음식이라 여겼다. 차라리 치킨을 시켜먹자는 말을 들었음에도 고생을 자처했다. 엄마의 정성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까.
닭 손질을 시작했다. 난 음식에 기름기가 생기는 게 제일 싫다. 이건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미식의 문제다. 아무리 몸에 좋은 음식이라도 기름기가 둥둥 뜬 음식은 속이 먼저 거부한다. 순두부찌개의 고추기름을 보면 손이 먼저 기름을 거둬내고 매운탕의 기름기며 갈비찜의 기름기도 마찬가지다. 치킨이야 기름기가 보이지 않아 그냥 먹기는 하지만 닭백숙이나 닭볶음은 예외다. 둘은 기름 제거가 우선이다. 닭 두 마리를 선택해서 몸에 붙은 기름을 제거하니 그 모습이 참으로 야하다.
맨몸을 드러낸 야한 모습 위에 백숙 재료를 넣기 시작했다. 삼계탕 재료라 쓰였지만 삼이 들어있지 않은 봉지를 먼저 넣었다. 식구들이 열 체질이라 삼은 되도록 삼가는 편이다. 구수한 맛을 위해 볶은 구기자를 작은 봉지에 담아 넣고 마늘과 대추를 첨가하고는 마지막에 옻물을 부었다. 닭백숙을 끓일 때 옻물이나 황칠물을 넣으면 구수한 맛이 배가 된다. 요즘은 옻이 오르지 않는 옻물이 나오니 걱정 없이 옻물을 넣을 수 있다.
모든 재료가 들어간 압력밥솥을 불 위에 올린 후 강불로 팔팔 끓여 약불로 뜸을 들인 후 공기가 빠졌을 때 건져내면 된다. 백숙이 끓으면서 냄새가 오르기 시작했는데 냄새부터가 건강하다. 온 집안에 건강이 스며드는 느낌이다. 아들도 이 냄새를 맡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백숙을 건져내니 들어갈 때의 모습이 아닌 꾀죄죄한 모습으로 나왔다. 모습이야 어찌 되었건 맛만 있으면 되지 싶어 프라이팬에 건져 죽을 준비하는 동안 은근한 불에 다시 끓였다. 촘촘한 채로 걸러낸 육수물로는 미리 불려둔 찹쌀과 녹두를 넣어 뭉근하게 죽을 끓였다.
뿌듯한 마음으로 음식을 차려낸 후 아들을 불러 식사를 하는데 아들은 닭다리 하나만을 뜯고는 수저를 놓았다. 건강을 위한 거니 더 먹으라고 해도 거부한다. 마음에도 없는 음식을 억지로 먹으면 건강에 해롭다나 뭐라나. 입씨름을 몇 번 했으나 닭다리 하나에 죽은 손도 대지 않은 아들을 이길 수는 없었다. 잘 먹었다고 말하며 일어나는 아들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잘 먹지 못한 게 뻔한데. 차라리 치킨을 시켜줄 걸 그랬나.
아들 덕에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나만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을 만끽했다. 그러면 어떠랴 누구라도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이지.
아무리 건강을 위한 음식이라도 본인이 싫으면 더 이상 건강한 음식이 아니다. 선택권은 만든 이에게 있는 게 아니라 먹는 이에게 있다. 그런데 나는 그 선택을 내가 하려 했다. 음식에서뿐만이 아니다. 일상에서도 그랬다. 널 위한 거야란 명목하에 아이들의 결정권을 내가 쥐고 흔들었다. 방안이 어질러져 있으면 스스로 치우겠다는 말을 들었으면서도 잔소리를 해가며 청소를 했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싫은 소리라도 들을라치면 누구를 위해 한 일인데 화를 내냐며 되려 화를 냈다. 내가 자초한 일에 내가 분개한 것이다. 싫다면 싫은 대로 인정해줘야 하는데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만 했다. 원하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관계를 악화시키고 있었던 거다.
널 위한 거야
'널 위한 거야'라는 말은 상대가 원하는 일을 할 때 사용해야 한다. 내가 판단하여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방이 깨끗한 게 옳은 일이면 그게 옳다고 말하면 된다. 그다음은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하게 손을 놓아야 한다. 괜히 나서서 고생하고 싫은 소리를 들을 필요는 없다.
몸에 건강한 음식을 먹이려고 하다 괜히 아들 마음만 불편하게 만들었다. 역시 치킨이 진리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