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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Aug 28. 2021

공짜 돈은 빨리 써야 해

공짜돈 아니야!

공짜 돈 은행이자

퇴근을 해서 집에 들어서는데 아들이 대뜸 나무란다.


"아니, 어머니 어쩌자고 저를 이렇게 귀찮게 만드세요. 은행에서 전화가 왔잖아요. 만기 된 통장이 있으니 찾아가라고요."

"통장? 무슨. 네가 모르는 네 통장이 있어?"

"그걸 제게 물으시면 어떡해요. 통장을 만드신 분이 어머니신데"

"통장? 무슨 통장이지? 아~아"


생각이 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들의 통장. 아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모든 통장을 넘겼다. 너도 이제 어른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네 재산은 네가 관리해라 하면서. 하지만 넘기지 않은 통장이 하나 있었다. 아들의 이름으로 되어 있지만 아직은 내 손에 움켜쥐고 있는 통장이. 그게 만기가 된 모양이다. 그런데 왜 내게 전화가 안 오고 아들에게 전화가 갔지? 아들이 성인이 되었다고 돈 관리도 예금주인 아들과 하겠다는 건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통장을 만들어 저축을 하게 했다. 경제 교육 같은 거창한 의도를 두고 한 행동은 아니다. 그저 통장에 자신의 돈이 쌓이는 기쁨이나 맛보라고 만들어준 것이다. 유치원 때까지만 해도 아이들과 직접 은행에 가서 저축을 했는데 초등학교 이후에는 아이들이 바쁘다는 이유로 돈을 받아 혼자 은행에 가 입금을 했다. 그때 애들 이름으로 적금 통장을 만들어 조금씩 돈을 넣었는데 그것이 쌓이고 쌓여 제법 돈이 되었다. 이후에는 1년, 3년 단위의 정기예금 형태로 은행에 보관을 했다. 그 돈이 만기를 반복하고 있다.


요~~ 오. 아들의 말에 입가에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꽁돈이 생길 거라는 기대감에서다. 통장이 만기 되면 생기는 꽁돈, 그 이름도 거룩한 '이자'다. 경험해 보지 않으신 분은 모르실 거다 꽁돈, 이자가 주는 행복을. 또 입금액이 몇 억씩 되어 이자가 몇 백씩이나 되면 이런 기분은 느낄 수 없다. 꽁돈은 바로 써야 제맛인데 몇 백을 바로 쓴다는 건 부담이 되는 일이니까. 하지만 몇 십만 원은 얘기가 다르다. 바로 써도 부담이 전혀 없다. 큰 액수가 아니기에 따로 넣어 놓기도 민망하다.


통장을 만들 당시 은행 이자가 0.8%였으니 1%가 되지 않은 금액이다. 그러니 요즘 세상에 은행에다 저금을 하는 사람을 바보라 하지. 그럼에도 난 저 티끌만큼의 이자에 행복해하는 바보가 되었다. 20년 넘게 주식을 한 남편이 돈을 잃기도 하고 따기도 하는 동안 나는 돈을 잃어본 적이 없는 투자계의 선수가 되었다. 올랐나 떨어졌나에 마음 졸일 필요가 없는 금융계의 고수가 된 것이다. 진짜 투자계의 고수들이 보면 배꼽 잡고 웃을 일이지만 원금 보장이 투자의 목적인 나로서는 이렇듯 가끔 붙는 이자조차도 고마울 수밖에 없다.


큰 부자가 될 수 없는 나

신혼 초 남편의 주식이 잘 될 때가 있었다. 그때 느꼈다. 주식은 잃을 때보다 딸 때가 더 두려운 존재라는 걸. 수익이 높을 때는 하루에 몇십, 일주일에 몇 백씩 오르는 걸 봤다. 1~2주 만에 봉급을 초과하기도 했다. 남편으로부터 용돈도 받고, 아이들에게 피아노도 사줬다. 하루에 50만 원씩 노동의 대가 없이 오르는 돈을 보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돈을 만만하게 보고 노동의 가치를 절하하면 어쩌나 걱정이 돼서다. 더 이상 높은 수익은 행복이 아니었다. 다행인지 이후로 주식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공중분해되어 사라지는 회사까지 생겨났다. 원금이 바닥을 보일 무렵에야 남편의 주식 수익률은 조금씩 회복되었고 재투자를 통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원금으로만 따지면 은행에 적금을 하여 이자를 따 먹고 있는 나의 승리다.


돈에 있어 소심하기 그지없는 나는 큰 부자가 될 가능성이 낮다. 그래도 소확행을 누릴 만큼의 돈들이 가끔씩 들어오니 이렇게 웃을 수 있다. 아들과 은행에 가서 이자를 받고 원금은 다시 정기예금으로 넣었다. 인심 좋게 커피라도 사 먹으라며 아들에게 5만 원을 건네고 내 커피값도 챙겼다. 공짜 돈은 바로 써야 한다는 개똥철학에 저녁엔 치킨을 시켰다.


그러고 보면 은행은 참 고마운 존재다. 안전하게 내 돈을 보관해주고 이렇듯 공돈까지 챙겨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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