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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24. 2021

나이를 속인 사진

자연 속에 녹아들었다.

추석 끝자락에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인근 산을 찾았다. 등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았고 가을의 상쾌함을 마시기 위함이었다.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계절,

흐르는 가을을 그대로 잡아두고 싶었다. 사진을 찍었다. 아름다운 순간을 찍었다. 인생에서 남길 수 있는 게 이름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싶었다. 아름다운 것, 새로운 것은 흘러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담아내어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한다. 사라질지 모르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하늘을 담고, 나무를 담고, 꽃을 담았다. 쫄쫄쫄 흐르는 개울물 소리와 살랑거리는 바람 소리도 담았다. 그렇게 자연을 담았다.


자연을 담아내느라 바쁜 나에게 남편이 소리쳤다. 자신의 사진 속으로 들어오라는 거다. 싫다는데 자꾸 나를 자연 속에 밀어 넣으려 한다. 그래선 안 된다 싶었다. 사진 속엔 아름다움이 담겨야 하는데 사진을 망치는 피사체가 들어가선 안 된다 여겼다. 남편은 그걸 모르나 보다. 그런 나의 마음을 모르나 보다. 아니면 아직도 나를 아름답다 착각하는 건가. 에라 모르겠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데 그들과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뭐야. 달려들어 남편의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


사진을 찍고 확인을 하는데 나의 반응? 뭉크의 절규를 떠올려라. 가관이다. 자연을 훼손했다. 눈 뜨고는 못 볼 얼굴, 패스도 아니고 삭제다. 나만 당해선 안 되었다. 남편도 자연 속에 내던졌다. 컨트롤 브이다. 배꼽이 빠질 뻔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재밌기도 하고 오기가 발동하기도 했다. 제대로 된 자연물 '둘'을 담아내고 싶어졌다. 쟁반 같은 두 얼굴에 자지러지며 찍고 또 찍었다. 그러다 결국, 포기는 아니고 방법을 생각해냈다.


첫 번째로 생각해 낸 방법은 멀리서 찍기다. 되도록 얼굴이 드러나지 않게 멀리서 찍는 방법으로 인물보다 배경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일종의 속임수로 자연에 집중하다 보면 인물은 잊게 되는 효과가 있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자연 속에 녹아 있으니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두 번째 방법은 정면이 아닌 측면 찍기다. 정면에서 사진을 찍으면 납작 만두 같은 얼굴이 측면에서 찍으면 입체적으로 살아난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서양인보다 입체적이지 못한 얼굴 특성상 측면보다는 정면 그리기를 선호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의 얼굴은 많이 서양화되어 측면에서도 입체감이 살아난다. 정면의 납작 만두보다는 측면의 볼록렌즈를 선택하는 게 훨씬 좋은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사진에 진심을 보인 남편과 나는 멀리 찍기와 측면 찍기로 두 인물을 자연 속에 넣는 데 성공하고 여유롭게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사실 아름다움이란 건 심적으로 드러나는 것이기에 주름진 얼굴에서도 힘줄이 도드라진 손등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직 주름에, 힘줄에 세월을 아름답게 담아내지 못한 나는 그걸 드러내는 게 두렵다. 언젠가는 남편과 나란히 손을 잡고 정면을 향해 활짝 웃는 날도 올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멀리서 측면으로 우리의 나이를 속이고 싶다. 이런 우리의 속임수도 모르는 가을이 옆에서 여전히 아름답게 머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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