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선 미안해하고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주저하는 말에는 미안함이 묻어 있었다. 외모를 가꾸는데 관심이 없는 나로선 그 말에 속상할 일도 마음이 흔들릴 일도 없었다. 굳이 들었던 생각이라면 '아~, 어머니께선 여전히 여자시구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쳤을 뿐.
"너도 이런 거 하나 사서 써 봐라. 편하고 좋더라. 같은 걸로 하나 더 사 오려다 너는 다른 걸 쓰고 있을까 봐 안 사 왔다."
어머니께서 보여주신 제품은 전생에 나라를 구하진 못했어도 예뻐질 수 있다고 선전한 화장품이었다. 난 그 제품이 어떤 기능을 하는 제품인지 몰랐기에 관심이 없었다. 관심이 없었으니 기능을 따질 이유도 없었다. 어머니께서 주름 개선 제품이라고 알려주셨기에 그렇구나 했다. 물론 그 제품은 또 다른 기능이 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몰랐던 기능을 외모에 관심이 많으신 어머니께서 알아내시고 사 오셨다는 거다.
"어머니 추석 때 00 이가 화장품 사 왔잖아요. 그것도 주름개선 제품인데 그거 쓰셔도 돼요."
"그건 그거고. 이건 쓱쓱 문지르기만 하면 되니 손에 묻지도 않고 얼마나 좋냐. 너도 하나 사서 써 봐."
추석 때 둘째 아주버님 딸이 화장품을 사 왔더랬다. 어머니 것뿐만 아니라 큰 아주버님네, 고모네, 우리 것까지 보통 마음으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돈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동안 고모 아들이 어머니께 화장품을 보낼 때면 부러운 마음으로 택배 상자를 바라보곤 했다. 화장품을 살 능력이 없어서 부러워한 건 아니다. 그저 마음을 받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한 것처럼 조카애가 선물을 사 온 것이다.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때 사 온 조카의 화장품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다른 제품을 사 오신 어머니가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했는데 제품이 홈쇼핑에도 나왔다는 말을 듣고는 '아~ 어머니께서 쇼핑호스트 말에 혹하셨구나' 납득이 갔다.
이렇듯 어머니께선 외모에서든 운동에서든 자신의 몸에 대해선 진심이시다. 평소에도 자신의 건강을 위해 동네를 산책하고 방안에 놓인 자전거를 타며 운동을 하고 계신다. 본인께서는 죽을 때까지 자식들에게 신세를 지고 싶지 않아 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그걸 보는 나는 먼지라도 되어 어디 구석에 조용히 내려앉거나, 소리 없이 날아가 버리고 싶어질 때가 많다. 운동하지 않는 나를 게으른 사람으로 여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괜한 자의식에 빠져서 말이다. 혹시라도 몸이 아파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걱정하신 마음에 생겨난 성실함은 감사해야 할 일인 동시에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행위가 되기도 했다. 어찌 되었건 운동이나 외모 관리 면에서 나는 불성실한 사람이었으니까.
출근을 하려고 화장대 앞에 앉았다 거울에 비친 주름진 얼굴을 봤다. 몸이 나이드는 걸 느꼈다. 마음은 나이 들지 않는데 몸이 자꾸 마음과 멀어지고 있다. 매일 화장을 하시는 어머니께서도 나처럼 거울을 들여다보시며 주름을 한탄하셨을 것이다. '아이고, 이제는 몸이 마음을 따라가질 못하네' 하면서.
나이 드신 분들에게 주름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나이 들면 주름 정도는 초월하고 인정하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건 나의 착각이고 오만이었다. 노년의 주름도 중년의 주름만큼 속상한 것이었다. 그날 내가 본 어머니의 화장품은 나이를 잊고 싶어 하는 노년의 절실함이었다. 여자로 남고 싶어하는 커다란 바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