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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Oct 06. 2021

그래서, 집밥이다

지구야, 미안해. 실천 없이 반성만 해서.

휴일에는 마음이 여유로워져서일까? 아님 특별히 쉬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까? 멀쩡하게 밥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음에도 배달음식을 시키게 된다. 메뉴를 고르느라 시간이 걸리고, 그런 수고를 거쳐 고른 메뉴라 해봐야 늘 먹는 음식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는데 쓸데없이 머리를 굴려가며 선택을 하는 것이다. 저번 주가 그랬다. 그때는 대체 휴일까지 끼어 배달 횟수도 늘었다.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에 만족과 편리함만 있다면 머리를 굴리는 수고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노력과 비용을 들였음에도 배달 음식이 이로움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가장 큰 문제라면 양심을 콕콕 찌르는 쓰레기 문제를 들 수 있겠다. 코로나 전에도 음식을 배달해 먹긴 했지만 지금처럼 쓰레기가 많이 나오진 않았다. 먹는 횟수가 적었고, 음식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았던 탓이리라. 웬만하면 밖으로 나가 외식을 했으니 시켜먹는 음식이라야 고작 중국 음식이나 피자, 치킨 등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거기다 중국 음식의 경우 그릇을 수거해 가니 쓰레기를 처리하는데 문제가 없었다. 남은 음식은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으면 됐으니까. 피자나 치킨의 경우는 종이만 잘 정리하면 재활용으로 처리할 수 있어 그 또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배달되는 음식들 대부분이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겨온다. 한상 차림이라 할 만큼 다양한 반찬에 국까지 개인별로 포장되어 먹을 땐 좋은데 쓰레기 처리라는 난제를 남긴다. 굳이 이렇게 많은 그릇이 필요했나 싶을 정도의 양 때문이다. 한집에서 여러 명이 같은 요리를 시켰을 경우 국이나 반찬은 개별 포장이 아니라 하나의 커다란 그릇에 담아 덜어 먹을 수 있게 포장하는 것도 무방하다.

도시락과 샐러드를 먹었는데도 쓰레기는 한 짐이다.


늘어나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 수거업체를 늘리는 건 어떨까도 생각해 봤다. 중국 음식을 시켰을 때처럼 용기를 수거해가는 방식으로 일회용 플라스틱이 아닌 다회용 그릇을 사용하면 조금이나마 지구에게 덜 미안할 것 같다.


배달 음식의 문제가 쓰레기 문제에 그쳤다면 집밥에 연연하지 않았을 텐데 나 같은 경우엔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아무리 좋아하는 음식이라도 배달 음식은 두 끼 이상을 연속으로 먹는 게 쉽지 않다는 거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메뉴를 바꿔가며 음식을 시켜먹었더니 말 그대로 집밥이란 게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늘 먹던 평범하기 그지없는 집밥이 눈앞에 아른거린 것이다.


휴일의 마지막 날, 월요일 저녁에는 음식을 주문하지 않았다. 집에 있는 반찬에 누룽지를 만들어 간단하게 먹기로 한 것이다. 아들이 채소밖에 없는 반찬을 탓하자 후다닥 멸치를 볶았다. 잘 먹지 않는 견과류를 한 움큼 듬뿍 넣어서. 재료가 준비되면 요리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누룽지가 끓기 전에 멸치 볶음을 완성할 수 있다. 프라이팬에 기름과 간장, 설탕, 물엿을 넣고 중불에서 양념에 거품이 일 때까지 끓인다. 거기에 준비한 멸치와 견과류를 넣고 볶은 다음 마지막에 깨를 넣고 버무려주면 마무리 땡이다. 멸치 볶음에 짭짤한 집 반찬을 더해 누룽지를 먹으니 휴일 동안 빵빵했던 배가 개운해졌다. 이래서 집밥을 늘 먹는 밥으로 여기나 보다.


요즘처럼 맞벌이가 보편화된 세상에 집밥만을 고집하는 건 정신적 스트레스에 육체적 스트레스를 섞어 단단하게 굳힌 피로를 끝도 없이 쌓아 올린 것과 같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험을 쌓는 일이다. 필요에 따라 반찬과 배달 음식이 주는 자유와 휴식도 제공받아야 한다. 단지 그것이 매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거지만. 


배달 음식으로 휴일을 보내고 깨달은 점이라면..

그래서, 집밥이다.

채소밖에 없는 식탁이라고 투덜대는 아들을 위해 후다닥 마련한 재료들. 견과류를 먹지 않는 아들을 위해 준비했다.



멸치 볶음에 다른 양념은 넣지 않고 기름에 간장 조금,  설탕과 요리당만 넣어 만든다.
기름이 거품을 내며 끓기 시작하면 멸치를 넣고 중불에 볶아낸다. 신속하게 멸치볶음 완성.
마지막으로 깨를 뿌려 저어주면 끝.
음식을 찍고 보니 아이들이 먹을 반찬이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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