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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Dec 24. 2021

제사를 레볼루션하라

과연?

발칙한 상상

변화는 간혹 엉뚱한 상황에서 예기치 않은 순간에 발생한다. 장난 삼아 던진 말이 발칙한 상상과 만나 혁명을 일으키니 말이다. "장난 아니었어? 웃자고 한 말 아니었어?" 그런 말 따위는 물 건너갔다. 이제 우리 앞에는 변화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날은 귀신보다 무섭다는 일요일 밤이었다. 우리는 향을 피워가며 애써 시할머니 귀신을 불러내고 있었다. 우리가 시할머니를 기억하고 있다고, 음식을 만들었으니 맛있게 드시라고 길을 내어 준 것이다. 


이른 저녁을 먹고 기계처럼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제사상을 차려내고는 음복의 시간에 각자 먹고 싶은 것을 하나씩 입에 물고 소리 없이 오물거릴 때였다.


"세상 참 좋아졌어. 계절 구분 없이 과일이 나오질 않나. 맛난 음식이 지천에 널려 있질 않나. 이 좋은 것을 못 먹어 보고 돌아가신 분들만 불쌍하지."


제사상 위에 꼿꼿하게 서 있는 시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보며 어머니께서 말의 물꼬를 트셨다. 그 말을 남편이 꽈배기 꼬듯 배배 꽈서


"그러게요. 할머니도 먹고 싶은 음식이 많을 텐데 맨날 같은 음식만 차려주니 지겹기도 할 거예요. 솔직히 우리가 못 들어서 그렇지 해마다 그 나물에 그 반찬이라고 욕하면서 드시는지 몰라요."

"아이고, 그러기야 하겠냐. 이렇게 정성껏 음식을 차리는데 맛있다고 드시지. 그리고 할머니는 나물 좋아하셨다"

"에~이, 그때는 먹을 것이 없으니까 나물을 좋아하셨겠죠. 어머니 말씀대로 요즘에는 맛있는 음식이 지천인데 제사상에 요즘 음식들을 차려 봐요. 할머니께서도 그게 맛있다고 더 좋아하시지."

"진짜로 그럴까?"


어머니와 남편의 대화가 조용한 제사 분위기를 들썩이게 했다. 과일 몇 조각 찔끔거리다 음식들 정리해서 재빨리 설거지를 하고 제사를 마무리하려 했던 나와 형님은 이야기의 방향이 궁금해 자리를 뜨질 못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어머니, 그럼 우리도 제사 음식을 좀 바꿔보는 건 어때요?"

적극적인 자세로 의견 하나를 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진 없었는데.


"그래, 뭘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냐?"

"글쎄요?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요?"


의견만 내고 대안조차 제시하지 못한 나의 미적거림에 장난이 발동한 남편이 또다시 거든다.


"어떻게 바꾸긴. 한 해는 한식, 다음 해는 중식, 그다음은 양식. 돌아가면서 차리면 되지."

"그럼 한식, 중식, 양식 요리는 누가 하는데요?"

"누가 하긴 요리사들이 해야지."

"그럴게 아니라 각자 집에서 음식을 한 가지씩 해 와서 제사상을 차리는 건 어때요? 그러면 일부러 음식 장만한다고 휴가를 내지 않아도 되잖아요."


형님도 한 마디 거든다. 휴가를 내고 제사 음식 만드는 것이 버거우셨던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때그때 사정에 따라 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음식을 각자 집에서 만들어 오든지 아니면 전문 요리사가 만든 음식을 배달시켜서 차리면 되죠, " 

"아무리 그래도 제사에 배달 음식은 아니다."

"어머니도 참. 그렇게라도 차리는 게 어디예요. 앞으로는 제사 안 지내는 집도 많아질 거예요. 간소화하는 건 물론이고요. 우리야 부모 말 잘 들어 제사를 챙기지만 우리 자식들 세대는 그렇지 않아요. 걔들은 제사보다 자기 일이 먼저일 걸요. 그런 얘들한테 음식은 정성이다 하며 직접 만들라고 해 봐요 얼씨구 좋다 하겠네요. 우리가 그 애들한테 빈틈을 줘야 해요. 그래야 그 얘들도 자기들의 생각으로 빈틈을 채우죠.


우리 세대는 떠밀려서라도 제사를 지냈다. 그것으로 제사는 익숙한 일이, 당연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다음 세대에게 제사는 익숙한 일도, 당연한 일도 아닐 것이다. 제사는 제사상을 차리는 날이 아닌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날이 될 것이다. 껍데기는 가고 알맹이만 남는.


"그래? 그럼 그렇게 해 봐라. 이왕이면 식구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차리고. 자손들이 잘 먹어야 돌아가신 분도 좋아하실 테니."

"정말이죠. 내년부터 그렇게 합니다. 그때 가서 딴소리하기 없기예요."


남편은 어머니의 결정에 몇 번의 다짐을 받았다. 내 남편, 참 많이 변했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전통을 고수하며 어머니 말씀에 토를 달지 않던 사람인데. 언젠가는 큰아주버님에게 넘어 갈 제사기에 부담을 덜어내고 넘기려는 걸까?


웃으며 떠드는 속에 아버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의 제사 풍경은 아버님이 살아계셨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풍경이었다. 아버님의 부재가 가벼워진 집안 분위기와 의견의 자유로움을 불러왔다. 전통과 고집으로 이어온 제사 문화에 균열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어머니의 믿음은 예수님에게도 부처님에게도 향해 있지 않다는 걸. 어머니의 믿음은 오직 조상신에만 닿아 있는 걸. 그런 분이 '그럼 그렇게 해 봐라'라는 말로 분위기에 동조했지만 내일 밤이라도 당장 시할머니를 만나실 수 있는 일이다. 시할머니로부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다. 그리고 제사는 일 년 후다. 그 사이에 벌어질 일들은 예측 불가다. 그럼에도 그날의 대화가 좋았던 건 분위기 때문이었다. 제사에도 가족들이 으싸으싸하며 웃을 수 있는.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하며 웃을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다.


내년 제사가 기대된다. 기대는 기대감 없는 기대다. 하지만 내년에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면 껍데기 같은 제사상이라도 차릴 수 있을 거 같다. 혁명의 깃발 앞에서 "장난이었어. 웃자고 한 말이었지"라며 능청을 떨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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