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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Feb 22. 2022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코로나 판정을 기다린 시간

결과가 나오기까지 마음은 싸늘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다양한 이유로 머리가 복잡해졌다. 선택지는 둘 중 하나인데 거기서 비롯된 차이는 맞닿은 꼭짓점에서 부채꼴을 그리며 벌어지고 있었다. 음성이면 가능성이 있다. 토요일에 결과가 나오니 월요일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싶게 일할 수 있다. 그럼에도 만에 하나 양성 판정이라도 받게 된다면? 그럴 리는 없다.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2년이 넘도록 마스크와 혼연일체가 되어 보낸 세월이 얼만데. 명절과 제사를 혼자 지내며 외식과 여행의 추억을 곱씹으며 보낸 시간이 얼만데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다.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건 정말 세상이 나를 버린 거다. 충성에 대한 배신이다. 로맨스 영화에 난데없이 칼을 들고 등장한 처키다.


나에게도 있을 수 있는 일

일의 시작은 목요일이었다. 퇴근을 한 시간 정도 남기고 있을 무렵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걷고 있는지 목소리가 헐떡거렸다.

"무슨 일이셔?"

"나 지금 집에 가고 있어. 우리 부서에 코로나 확진자가 생겨 부서원 모두 검사를 받고 각자 집으로 향하는 중이야."

"아~~~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사무실에서는 마스크 잘 쓰고 있었지? 밥은? 혹시 커피라도 같이 마신 건 아냐? 아~~ 안 되는데. 엄마들 이런 일에 정말 민감한데."


남편의 PCR검사 통보였다.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일이라 생각했던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평소 조심, 조심을 외치던 우리 집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을 남편의 입을 통해 듣고 말았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온 방을 돌며 살균수부터 뿌렸다. 남편은 딸의 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방에서 남편 물건을 챙겨 딸의 방으로 옮기려다 멈칫했다. 화장실이 걸렸다. 남편이 딸의 방을 차지하면 어머니 방 앞 화장실을 써야 한다. 그러면 어머니와 동선이 겹치는데. 남편이 철저히 고립되려면 화장실이 딸린 방이 필요하다. 남편 대신 내가 짐을 옮겼다. 남편이 우리 방을 차지하고 내가 딸의 방주인이 되었다.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남편은 이미 확진자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슬슬 남편을 피하고 있었다. 출근할 때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호흡을 했던 사람인데 몇 시간 만에 마스크를 쓰고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순식간에 남편은 카프카의 거대한 벌레가 되어버렸다. 멀쩡한 모습으로 가족들에게 소외된 것이다.


금요일 아침, 확실하게 도장이 찍혔다. 오미크론에 당첨되셨습니다! 결과는 나를 부산하게 만들었다. 염치나 미안함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 학부모들께 사실을 알렸다. 검사를 받아야 하니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다. 부모가 맞벌이인 아이들이 걱정이 되어 옆 학원 선생님께 부탁도 드렸다. 비참했다. 상가에 있는 많고 많은 학원 중 하필 내 학원이 세계적 유명인사의 선택을 받다니.


어머니, 아들과 함께 PCR검사를 했고 우리 모두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재택 치료자의 공동 격리자가 되어 격리 해제 전 검사를 다시 받아야 했기에 평범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비워졌다. 수업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일말의 기대도 사라졌다. 죄를 지었다는 기분을 차치하고 학부모님들께 다시 문자를 보내 이번 주는 수업을 쉬어야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죄송한 맘이 깊어질수록 남편에 대한 원망은 커졌다. 피아노 학원 원장님이 휴가 받았다 생각하고 푹 쉬고 오라고 했는데도 마음은 편치가 않았다.


지금은 열심히 밥 짓는 일을 하고 있다. 삼시세끼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들어 배달하는 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하루가 참 길다. 오전에는 아주버님이 갈비탕을 사다 주셔서 재검사를 받고 와 뭘 먹을까를 걱정하지 않아 좋았다. 전화를 해 준 학생과 학부모가 있어 마음도 편해졌다. 이번 일은 내가 생각한 것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들이 오히려 나를 걱정하고 있으니.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두려움에 떨었지만 문제와 부딪친 후 받은 충격이 생각보다 크지 않아 놀랐다. 이번 일은 세상이 나를 버려 생긴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으며 죄의 대가도 아니었다. 방학 끝머리에 남은 며칠의 시간은 나에게 꿀같은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벌써부터  딸의 침대가 구름솜처럼 포근해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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