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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15. 2022

손흥민 때문에 잠 못 드는 밤

잠 못 드는 밤

"어머니, 오늘은 새벽이 아니라 밤입니다."

아들의 말에는 당당함과 홀가분함이 배어 있었다. 어제 내가 한 말 때문에 미안함이 남아 있었던 게 분명하다. 오늘 경기는 나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시간대가 아니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에서 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난 아들과 남편이 축구를 보는 날이면 잠 못 들어하고 있었다. 눈을 감고 버텨내고는 있었지만 그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는 짧은 귓구멍을 너무도 빨리 통과해 잠자리 날개보다 가벼운 고막을 쉽게도 뚫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들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고, 따스한 설렘에 찬바람을 일으킬 수 없어서였다. 눈만 감으면 잠들 수 있는데 그걸 왜 못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잠들 수 있을 거라 장담한 시간은 2시간이 넘도록 '생각하지 마, 생각하지 마'를 외치며 뇌를 달래기에 바빴다. 그런 외침이 결국은 뇌가 잠들지 못하게 붙들고 있다는 것도 모르면서 말이다. 그렇게 심야 아니 첫새벽에 행해진 고행은 나를 잠 못 들게 만들었고 그게 다 누구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를 생각하게 했다.


누구 때문? 어휘가 풍겨내는 어감 때문이랄까 그의 이름 뒤에 '때문에'란 말은 절~대 붙이고 싶지 않았는데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해 결국 이렇게 적고야 만다. 하지만 이 말속에는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책망의 의미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책망은커녕 방송이 있는 날이면 가벼운 걸음걸이로 싱글거리며 간식을 챙기는 아들을 보는 것이 오히려 감사하다고나 할까.


그날도 아들은 남편에게 물었다.

"아빠 오늘 밤 어때요?" 

"글쎄, 낼 출근인데 가능할지 모르겠다. 일단 자보고 일어나면 부를 게"

비록 다른 요일보다 마음 편한 금요일이긴 했지만 출근하는 직장인에게 새벽 3시의 축구 경기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선택지였다. 그럼에도 아들에게 일어나 보겠다는 최소의 여지를 남기고 남편은 잠이 들었다. 남편과 아들의 대화에서 내가 배제된 것은 난 잠에 들면 업어가도 모르는 멍청이가 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거실에서도 볼 수 있는 경기를 굳이 내가 잠든 안방에서 보는 무례를 행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날 확실한 답을 주지 않고 잠들었던 남편은 3시에 일어나 아들과 함께 몇 번의 환호성을 질러야 했다. 그 환호성을 내가 고스란히 듣고 있었다는 것도 모른 채. 


귀가 밝은 사오정

어제는 귓구멍이 막힌 사오정이 비밀을 털어놓은 날이었다. 사오정은 자신의 귀가 막히지 않았다고, 모든 소리를 생생하게 듣고 있었다고 말했다. 

"에~이 거짓말. 잠든 거 다 봤는데 무슨 소리야?"

그들은 진심으로 내가 잠들었다 믿고 있었다. 하지만 증거로 제시된 대화 내용에 소리 없이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시끄러우면 말을 하지. 그럼 나가서 봤을 텐데."

"아니. 그냥, 괜찮아서."


잠을 방해받으면서도 난 그들을 거실로 내쫓고 싶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훗날 그들이 추억하는 그림 속에 내가 함께 하고 싶어서였다. 나이 든 남편이 아들과의 추억을 떠올릴 때나 아들이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면 그 곁에 당당하게 자리하면서. 비록 옆에서 콜콜 잠이나 자고 있었다는 말을 듣는 한이 있더라도.


가끔 남편에게 말한다. 손흥민 선수한테 뭐 받은 거라도 있어 매 경기를 그렇게 열심히 보느냐고. 팬이 무슨 대가를 바라고 우상을 추앙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딴지를 거는 것이다. 그러면 남편은 말한다.


"있지. 있으니까 열렬하지. 받은 것이 뭐냐고? 그건 국가 기밀이라 말할 수 없네~"


잠 못 드는 밤이어도 그들과 함께 그린 그림이기에 난 그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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