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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May 20. 2022

어리고 약한 존재가 불쌍한 이유

보살핌이 필요해

내가 봄을 좋아하는 건 이 계절이 찾아오면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색들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침울한 무채색의 대지가 눈을 떠 연분홍, 샛노랑, 초록으로 옷을 입으면 세상은 알록달록 그림이 된다. 그 안을 거니는 바람은 혼자라도 즐겁다며 이리저리 색을 퍼뜨려 세상은 한없이 밝아진다.


따사로운 햇빛에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을 우러른다. 뜨겁지 않아 좋다. 눈꺼풀 밑으로 흐르는 나른함은 봄이 내리는 선물이다. 이렇게 온도가 적당한 것은 여리디 여린 잎을 보호하기 위한 햇빛만의 사랑법 같다. 약한 것이 뜨거움에 데어서는 안 된다는. 그 따사로움에 나무처럼 우뚝 선 내가 긴 호흡을 한다.


하늘하늘 나비도 날아든다. 봄의 풍경이 완성된다. 다 좋다. 땅에 뿌리를 내린 생명도. 자유로운 바람도. 나풀거리는 나비도. 이전에 존재했으나 존재하지 않은 듯 사라졌다 다시 태어난 모든 것들에는 사랑스러움이 스며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봄의 풍경에는 아름다움만 존재하지 않았다. 자세히 보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게 아니라 자세히 보아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온몸으로 따스함을 빨아들이다 초록의 잎들이 몸을 배배 꼬는 것을 봤다. 왜지 싶어 눈을 가까이 댔다가 소스라쳐 물러섰다. 이걸 뭐라 표현하지. 이런 걸 표현하는 말이 있었는데. 무슨 증후군이라고 했는데. 작고 앙증맞은 것들이 오밀조밀 달라붙어 있는 것을 봤을 때 느끼는 공포 같은 거. 그건 놀라움을 넘어 소름에 가까웠다.


잎 뒤에는 깨보다 작은, 검은 알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처음에는 자잘한 점들이 혐오스러웠는데 사진을 찍어 형체를 확인하고는 이내 잎들을 걱정하게 되었다. 봄이 좋다고 푸른 계절을 즐기려고만 했지 그 푸르름에 아파하는 존재가 있다는 건 알아차리지 못했다. 무엇인가를 키우는 사람은 섬세함을 잃어서는 안 됐는데 그걸 놓쳤다. 원예사가 되려면 예민한 촉수에 냉철한 시선을 가져야 한다. 보는 것만 즐겨선 안 되는 것이다.


까만 점처럼 보였던 벌레들
벌레의 형체가 드러났다.
확대하니 왕~~~ 무섭다


나비가 날아드는 게 좋다고 흔적까지 좋아한 건 아니다. 흔적은 양손으로 내젓고 싶다. 그가 날아간 자리엔 여지없이 진딧물이 줄을 서니. 얼마 전에도 상추와 당귀에 진딧물이 생겨 잎을 따 버린 일이 있다. 무공해라 좋아했는데 다닥다닥 붙은 진딧물이 징그러워 도저히 먹지 못할 거 같아서였다. 해충은 약한 존재를 잘도 알아본다. 여리고 작은 잎에만 자리를 잡고 괴롭히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이것 역시 그들만의 생존법인가. 이래서 약한 존재가 불쌍하다. 어디에서든 이유 없이 당해야 하니.


숨 쉴 틈이 없는 월계수 나무


가지치기 후 새순이 돋고 있다


대문 앞 월계수 나무에도 문제가 있었다. 나무는 고개를 들기가 힘든지 자꾸만 옆으로 기울어져 갔다. 보는 사람까지 머리가 무거워졌다. 새순이 났는데도 잎이 말라가는 것이 이상해 눈을 부릅뜨니 여긴 깍지벌레가 하얀 점을 찍고 있었다. 잎이 무성해 바람이 통하지 않으니 벌레들도 살기 좋았나 보다. 역시나 과한 것에선 문제가 생긴다. 남편이 가지를 잘라 숨통을 열어주니 앙상한 뼈대가 숨을 쉰다. 저절로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무심하게 지나치기만 했던 게 미안했다. 전에는 툭툭 잘리는 가지를 보면 가슴이 덜컹했는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어떻게든 나무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이 우선했나 보다.


나무나 사람이나 어리고 약한 존재는 보살핌을 받아야 한다. 돌보지 않고 그저 잘 자라겠지 방치하면 금세 표가 나니 말이다. 여린 잎들이 점점 두꺼워지고 진해지면 진딧물이나 깍지벌레는 공격할 힘을 잃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보호자로서의 임무를 잊지 말고 눈에 불꽃을 켜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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