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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Sep 07. 2022

뚱뚱해진 마카롱

돈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마카롱의 유혹

힐끗 쳐다보고 지나쳤다. 남편은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본 그들의 자태는 요염했다. 색은 화려했고 장식은 요란했다. 불량한 시선은 날카롭다 못해 영(靈)스러워 불안한 시선을 금세 알아차렸다. 너는 지금 우리를 떠나지만 돌고 돌아 결국 다시 올 거라는 예언이 사이렌의 유혹처럼 뒤통수를 간질이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끌려갈 순 없어 모른 척 지나쳤다. 난 너희의 약점을 알고 있어. 그러니 쉽게 넘어가지 않아. 그런데 어떡하냐 약점을 알고 있음에도 돌고 돌아 결국 그 자리인 걸. 새뜻한 그 색에 이미 반해 버렸는 걸.


백화점엘 가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푸드코트를 돌곤 한다. 먹는 맛보다 보는 맛을 즐기는 것이다. 먹을 때는 선택의 아쉬움이 남지만 볼 때는 미련이 없다. 그저 설렘만이 그 길에 동행한다. 하릴없이 구경을 하다가도 여지없이 꽂힌 곳은 언제나 마카롱 가게 앞이었다.


마카롱 색이 문구점 아폴로 색과 닮았다.

처음 마카롱을 만났을 때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첫인상은 불량스러웠다. 알록달록 고운 색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아이들을 유혹하던 형형색색의 불량식품에 비할 바 아니었다. 그것들을 베어 물면 내 몸 역시 파란색으로 노란색으로 물들 거 같았으니까. 맛은 또 어떤가 쫀득 바삭한 쿠기에 혀 끝에 달달하게 녹아드는 크림은 찌푸린 얼굴도 환하게 펴주는 마법 아니었던가. 부모의 명을 어기고 몰래몰래 사 먹었던 유혹자의 달콤함처럼. 그럼에도 마카롱을 자주 사 먹을 수 없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 이유가 마카롱과 거리를 두게 했다.

마카롱을 먹으면 이런 모습이 될 것 같아. <줄무늬가 생겼어요. 데이비드 섀논>

그 첫째는 마카롱의 가격이다. 요즘에는 다양한 곳에서 판매를 해 가격이 낮아졌지만 백화점에서 사 먹었던 마카롱의 가격은 사특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두 세 입이면 사라질 것이 두 개만 먹어도 밥값에 근접했으니 말해 뭐할까. 그럼에도 그 화려함 앞에 자주 발이 멈췄던 건 어쩌다 먹는 건데, 라는 어쭙잖은 위로 때문이었다. 먹기 위해 스스로를 합리화했던 것이다. 그러니 음식 중에 늘 먹지 않아 값어치가 올라간 음식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마카롱을 말할 수밖에 없다. 매일 먹으라면 기겁을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음식인데 어쩌다 먹는 것이기에 가치가 올라간 음식. 누가 '한 입~만' 하면 '닥쳐'하며 고 미운 입을 내리칠 거 같지만 매일 먹으라면 돈을 준대도 오므린 입을 벌리지 않을 것 같은 음식. 접근성이 멀어 가치가 오른 음식이 마카롱인 것이다.


거기다 마카롱은 먹으면 반드시 살이 찔 거 같다는 결정적 약점도 지니고 있다. 베어 물 때마다 과자 사이로 삐져나오는 뭉근한 크림은 넌 지금 살이 찌고 있어. 배를 보면 모르겠어,를 쉴 새 없이 속삭인다. 이럴 때는 돈이 많지 않음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마저 든다. 돈이 많았다면 한 개 먹을 걸 두 개 먹고, 두 개 먹을 걸 세 개 이상 먹었을 테니. 그랬다면 그걸 듣는 귀는 아픔을 견디다 못해 피라도 흘렸을 것이다. 부족함이 과함보다 낫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살이 쪄 버린 뚱카롱의 위엄 앞에서 돈을 아끼지 않고 펑펑 쓸 만한 배짱이 누구에게 있을까?


돈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돈이 많다고 허세를 부리며 무턱대고 사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돈이 적어 먹고 싶어도 덥석 집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마카롱. 그런 이유로 돈이 많은 사람에게나 적은 사람에게나 마카롱은 공정한 음식이 되고 있다.


그래서 마카롱을 먹을 때마다 고마워한다. 돈이 없다는 이유로 몸에 좋은 음식을 사 먹지 못한다면 마음이 아프겠지만 적어도 마카롱만큼은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 사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니까. 오히려 돈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손에 잡히는 대로 고를 수 없어서. 조금이나마 살찌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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