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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Nov 06. 2019

나는 왜 어머님의 취미 생활까지 질투하는가?

육아는 엄마가 하는 것이 맞는데 왜 할머니의 손길을 기대했을까?


결혼 전이었다. 시댁에 들어와 사는 것이 결정되자 시부모님께서는 신혼방의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 놓으시고 나에게 와서 마음에 드는지 구경을 하라고 하셨다. 이미 다 완성된 상태에서 내가 마음에 안 든다 한들 바꿀 수 있는 일도 아니었고, 그 자리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도 아녔기에 마음에 든다고 고생하셨다고 말씀드렸다. 두 분은 그 말에 뿌듯해하셨고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분들이 나를 불러 방을 구경시킨 것은 나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라기보단 노력의 결과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족해 하자 어머니께선 남향이 어느 쪽이니 침대는 어디에 놓으면 좋겠고, 옷장은 어디에 두는 것이 좋겠다며 본인의 의견을 말씀하셨다. 그러자 아버님께서 화를 내시며 그런 것은 애들이 알아서 할 일인데 왜 나서서 이러쿵저러쿵하냐고 언성을 높이셨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여보, 놀랬잖아요. 애들 앞에서 무섭게 왜 그렇게 말을 해요. 좀 다정하게 얘기해요." 


순간 나는 적잖이 놀랐다. 어머니의 말투, 그 말투는  평소 내가 듣고 지낸 어르신들의  말투가 아니었다. 그것은 가끔 티브이 개그 프로에서 "오빠야" 하며 애교를 부릴 때나 사용하는 말투였다. 그런데 어머니께서 그 연세에 그런 애교 섞인 말투를 사용하고 계셨다. 나 자신은 애교가 넘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곰처럼 무뚝뚝한 것도 아닌데 그 말투는 낯설어도 한참 낯설었다.


그날 난 말투 하나로 어머님이 어떤 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사랑을 받고 계신 분이 분명해.'


나의 짐작대로 어머님은 아버님의 사랑을 듬뿍 받는 분이셨다. 그로 인해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란 말은 이제 나와는 상관없는 말이 되었다. 내가 아이를 키우며 힘들어할 때도, 직장엘 다니며 집안일을 도맡아 할 때도 어머님은 늘 열외였다. 어머님은 몸이 안 좋으시다는 이유로 자신의 취미 생활이 있다는 이유로 육아나 부엌일에서 해방되셨다. 아침이면 노래 학원엘 가셨고, 집에 와서는 그림을 그리셨다. 내가 종종거리며 바쁘게 움직일 때 어머님은 우아하게 그림을 그리고 노래 연습을 하셨다. 나의 직장 생활이 가능했던 것도 아이들 학교 근처에 학원을 오픈하고 돌본다는 조건이 붙었기에 가능했다.


가끔 부모님과 함께 산다고 하면 직장 생활 때문에 아이들을 맡기려고 함께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억울했다. 나는 자식은 부모가 키워야 한다는 아버님의 말씀에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 홀로 아이들을 키워냈다.


어머님의 그림 실력은 나날이 발전해 갔다. 요즘은 가을 분위기를 표현한 그림을 그리시는데 정말로 가을이 느껴진다. 추석 때는 가족들에게 재물을 부른다는 해바라기를 한 점씩 그려주셨다. 모두들 좋아라며 그림을 받아가셨다. 어머님의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환했고 손주들의 칭찬에는 몸 둘 바를 몰라하셨다. 그 모습에 나의 마음이 쓸쓸해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나는 어머님의 작은 손길을 간절히 바란 적이 있었다. 그때 어머님은 본인의 취미 생활로 나의 간절함을 보지 못하셨고 거기서 발생한 서운함 또한 알지 못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다 커서 나의 손길이 필요 없는 아니 오히려 그 손길을 부담스러워하는 나이가 되었다. 한데 어머니께선 빨래를 걷고 너는 일을 하신다. 나를 돕고 계신 것이다. 어긋난 타이밍이다.


그때 어머님께서 자신의 취미 생활을 조금만 게을리하고 집안일을 도와주셨다면 어떠했을까? 그랬다면 시집살이의 설움 따위는 모르고 살았을 것을. 이 순간의 마음이 어머니를 향해 활짝 웃고 있었을 것을. 돌이킬 수 없음이 마냥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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