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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빛구슬 Dec 23. 2019

우리 집 일을 남에게 알리지 마라.

열심히 쓰다 장렬히 죽겠습니다.

"남편 망신 주는 게 그렇게 좋아?"

대뜸 돌아온 말은 내가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다.


남편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쓴다는 건 안다. 그러나 내 글을 읽고 있지 않기에, 내가 무슨 글을 쓰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내가 집안의 소소한 일로 글을 쓰고 있으며 자신은 생각지도 않고 있는 '시집살이'란 단어를 꺼내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안다면 그런 쓸데없는 글 따윈 당장 집어치우라며 버럭 화를 낼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난 나에게 유리한 글만 언급하며 조회수가 몇이 되었다느니, 구독자가 조금 늘었다느니 하며 나의 브런치 소식을 조심스럽게 알리곤 했다. 그리고 며칠 전엔 김장을 한 남편에 대해 고마운 마음과 짠한 마음을 담은 글을 써서 조회수가 조금 늘었다는 걸 자랑하듯 이야기했더니 대뜸 저런 말을 나에게 던져버렸다.


내가 남편에게 브런치 이야기를 한 것은 요리 잘하는 남편을 두었다는 걸 자랑하기 위함이었지, 남편을 망신 주려 했던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을 곡해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지질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기분 나빠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부인을 도와서 아니 부인을 대신해서 김장을 해 주는 일이 왜 지질한 일이란 말인가? 내가 자신을 짠하게 생각했다는 것이 기분 나빴다는 뜻일까? 그 짠함 속에 나의 고마움과 미안함이 들어있었다는 건 정말 몰랐단 말인가?

요즘이 어떤 시댄데... 요리하는 남편이 무슨 흠이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뒤이어 글 쓰는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무엇인가를 자꾸 쓰려는 행위도 일종의 중독이라는 말로 나의 글쓰기를 모독하며 글을 쓰는 나의 의지를 꺾어버리는 충격요법도 주었다.


그런데 오늘 남편과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어머니께 듣고 내가 글을 쓰는 게 정말 잘못한 일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머니의 말대로라면 나의 글은 단지 일기로만 남아야 하고 남에게는 보여서는 안 되는 글이어야 한다.


며칠 전, 어머니께선 노래 교실에서 CD를 만드셨다. 그 CD에는 어머니의 노래와 함께 우리 가족들의 얼굴과 집의 영상이 담겼다. 그런데 노래 교실 원장님께서 그 노래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신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그 원장님은 자신의 노래 교실을 홍보할 목적으로 모든 수강생들의 노래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리신 모양이다. 그런데 노래 교실을 같이 다니신 어떤 분이 유튜브는 전 세계 사람들이 보는 것이라며 자신들의 노래도 이제 전 세계 사람이 볼 거라며 자랑을 하신 것이다.


그런 말을 듣고 오신 어머니께선 자신이 큰 잘못이나 저지른 사람 마냥 우리에게 고민을 늘어놓으셨다. 자신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우리 가족의 얼굴을 팔았다면서 말이다.


남편이


"어머니,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요. 그 동영상을 일부러 찾아보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우리 식구가 누군지 세상 사람들은 관심도 없어요.


하지만 어머니의 걱정은 줄지 않고


"아니다. 조회수가 몇 백은 되더라. 그 말은 몇 백 명은 그 동영상 틀 봤다는 말 아니냐? 난 우리 집 일이 집 밖으로 새 나가는 건 싫다. 늙은이가 주책이지 어디 자식들 얼굴을 세상 사람들한테 공개를 해. 무슨 해코지를 당하라고. 너희들도 명심해라. 절대 집 안 일이 집 밖으로 새 나가게 해선 안 돼. 괜히 세상 사람들 입방아에나 오를 뿐이지 좋을 거 하나도 없다"


그 후 어머니께선 노래 교실에 전화를 해 결국 동영상을 내리게 하셨다.


그날, 어머님의 말씀은 날 겨냥하고 하신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집안일을 만천하에 공개하려는 듯 글을 쓰는 나는 혼자서 뜨끔하여 글 쓰기를 주저했다. 


그러다 결심했다. 남편 말처럼 내 글을 누가 얼마나 읽는다고, 누가 내 글에 관심 따윌 갖는다고.

하여 당당히 맞서 장렬히 죽기로 다짐했다.


어머니께선 우리 집 일은 남에게 알리지 말라는 말로 나의 손을 막으려 하나 나는 열심히 손을 단련시켜 글을 쓸 것이다. 앞으로 난 글을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쓰지 않을 것이다. 단지 단련된 손만이 자판 위를 열심히 달리게 할 뿐이다. 


마음도 생각도 없는 손이 어떤 활약을 펼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계속 자판 위를 열심히 달리고 있을지, 물속에서 그릇들과 춤을 추며 놀고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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